[임선빈, 어느 연출가의 노트5] 갑의 횡포와 연극 '나르는 원더우먼'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8/08/06 [15:10]

[임선빈, 어느 연출가의 노트5] 갑의 횡포와 연극 '나르는 원더우먼'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8/08/06 [15:10]

 

갑의 횡포와 연극 '나르는 원더우먼'

 

▲ 임선빈 연극연출가 / 극작가     ©photo by 리버 에이치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과 명예를 얼마나 갖고 있을까? 이 질문에서 얼마나라는 부사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견해 차이는 사회마다 조금씩 다르고 인류가 전쟁과 질병, 봉건사회를 지나 자본주의 사회로 오는 동안 변형되거나 사회적 합의에 따른 범주 안에서만 발전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존엄하다고 믿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현재 우리사회에서는 얼마나동등한지 의심스럽다.

 

갑질 논란’, ‘갑의 횡포등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나는 이 현상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단 한 명만 모르는 바보 같은 트릭으로 말이다. 이 문장에서는 바보가 트릭(속임수)을 수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속임수임을 모르고 있는 저 단 한 사람을 가리킨다. 저 바보를 나는 이라고 부르고 싶다.

 

갑과 을은 원래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다. 보통 권력적 우위인 쪽을 , 그렇지 않은 쪽을 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갑을관계를 맺는다.는 표현이 생겼으며, 지위의 높고 낮음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극인으로서 나는 계약서에서 갑의 위치보다는 을의 위치에서 계약을 더 많이 했다. 갑을계약서를 법에 명시된 동등한 위치의 계약으로 했어야 마땅하나 언제나 을은 갑에게 더 유리하게 만들어진 계약에 동의 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을사(乙死)계약이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지난 2018615일부터 72일까지 대전에서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가 개최되었다. 경남 거제시의 극단 예도의 이선정 작, 이삼우 연출의 나르는 원더우먼이라는 작품이 공식 경연작에서 다른 작품들과 경연을 펼쳤다. 이 작품이 대한민국 연극제의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 눈에 띈 점은 작품의 소재와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 때문이었다. 작품의 연출을 맡은 연출가 이삼우 선생에 따르면 2016SNS를 통해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에 있었던 어느 버스 회사의 여차장들(일종의 버스 승무원)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 경남 거제시의 극단 예도의 이선정 작, 이삼우 연출의 “나르는 원더우먼”     © (사진제공=극단 예도)


당시의 가부장제에서 소외된 소녀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공장 노동자나 버스의 여차장으로서 남성 노동자들에 치여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소녀들은 육체적 정신적 착취를 소위 에 해당하는 자들에게서 공공연하게 당했으며, 부당한 처우와 모욕은 물론, 악의적인 성적 학대까지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당시 이 여차장들은 갑의 횡포에 맞서 문제제기를 하고 진보적인 행보를 보였다. 즉 자신들의 부당한 처지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시위도 이끌어냈다. 하지만 사회 강자들과 시민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였다.

 

연극 나르는 원더우먼은 현재까지도 횡행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갑과 을에 대한 이야기로 멋진(Wonder) 원더우먼이 되고자 했던 여차장의 이야기로 무대에 올려졌다.

 

한 편의 연극이 시대를 관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 연극의 경우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와 갑의 횡포에 대한 고발의 형식이라기보다는, 한 시대를 가슴 아프게 살아 낸 여차장들의 슬픈 이야기를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는 원더우먼의 용감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대체시켜 무대에 올렸다.

 

▲ 개최되었다. 경남 거제시의 극단 예도의 이선정 작, 이삼우 연출의 “나르는 원더우먼”     © (사진제공=극단 예도)

 

갑을계약서의 형식에서 갑과 을이라는 글자가 사라지고 다른 글자로 대체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급조된 자본주의 자유 시장체제에서 약자들에게는 변형된 신분 계급의 차별 형태로 스티그마 신드롬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약자인 이상 이것은 사회적인 낙인이 되어 일상생활에서조차 모욕과 멸시의 형식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얼마나많은 인권 공격으로 다가오는지 차마 다 열거할 수조차 없다. 이것은 앞으로도 인간 존엄성과 인권의 사회적 관념과 연결되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게 될 문제다.

 

나는 백마 타고 나타나 나를 구해줄 왕자를 기다리거나, 나르는 원더우먼이 되어 정의를 위해 싸우고 싶지 않다. 내 자신에게 나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가 얼마인가 자문하는 일을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혹시 단 한 명만 모르는 바보 같은 트릭의 그 바보가 아닌가?“ 라고.

 

 

임선빈

연극연출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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