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 ‘MLB 모자’로 유명한 조병태 소네트 회장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8/11/14 [18:16]

[좋은만남] ‘MLB 모자’로 유명한 조병태 소네트 회장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8/11/14 [18:16]

 

[좋은만남] ‘MLB 모자로 유명한 조병태 소네트 회장

 

▲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MLB 모자’의 시작과 소네트 기업의 성공 사례를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로 강의실엔 열기가 가득하다.     © 남정현 기자

 

LA다저스나 보스턴 레드 삭스 등 미국 프로야구팀의 로고가 새겨진 ‘MLB 모자1년에 약 7천 만 개가 팔릴 정도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미국 모자 시장의 15%를 점유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가 높은 MLB 모자는 조병태 소네트 회장에 의해 탄생했다.

 

미주한인사회의 존경받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그리고 모자업계 세계 1위 기업 소네트조병태 회장은 1965년 경희대학교 체력관리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설립자 조영식 박사의 철학과 비전에 감명받고 문화세계의 창조라는 교시를 벗 삼아 세계를 향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학생회 활동을 하며 체육대학에만 머물지 않고 문리과대학, 음악대학 등 모든 단과대학과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갔다고 학교생활을 회고했다.

 

세계를 향한 도전의 씨앗은 미국에서 피어났다. ‘소네트·플렉스 피트(Flex Fit)’는 현재 세계 1위의 모자 기업이지만, 그 출발은 쉽지 않았다. 성수중학교, 신용산중학교 핸드볼 팀을 전국 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국가대표 핸드볼 팀 코치로 활약, 세계적 핸드볼 팀을 만드는 데 기여한 그는 1975년 돌연 미국행을 결정했다. 세계는 넓다는 생각이 그를 이끈 것이다.

 

언어와 미국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조병태 회장이 한 일은 발로 뛰는 것이었다. 트렌드와 경쟁제품을 점검하고, 꾸준히 바이어들을 찾아가며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간신히 첫 주문을 받아 수출했지만 가죽모자에 사용한 풀에 곰팡이가 슬어 피해보상까지 해야 했다. 이렇게 가죽모자와 린넨 모자는 연달아 실패했다.

 

조병태 회장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도전하자고 결심하고, 1978년 프린트 모자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광고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모자 전면에 제품 광고를 부착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말보로, 버드와이저, 지엠 등 다양한 기업들이 프린트 모자를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1982년에는 자수 모자를 선보였다. 미국의 농구, 풋볼, 아이스하키 구단의 모자를 만들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1988년에 개발한 스냅백 모자는 스포츠 브랜드를 넘어 스트리트 브랜드까지 사로잡았다. 이후 중국의 값싼 물품이 쏟아지면서 위기를 맞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철저한 시장 조사로 새로운 출구를 만들었다. ‘원 사이즈=플렉스 피트가 탄생한 것이다.

 

기존에는 10가지였던 모자 사이즈를 탄성이 좋은 스판덱스 소재를 사용해 원 사이즈로 만들며 모자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 프로야구팀 홍보 모자도 그의 성공작 가운데 하나다. “특허 낸 플렉스 피트20년이 지난 현재에도 많은 업체에 의해 유사제품이 만들어질 정도로 모자 업계의 고유명사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소네트 그룹은 1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7천만 개 이상의 모자를 판매하는 기업이 됐다. 액션·스트리트·스포츠·아웃도어·골프·패션 브랜드 등 다양한 회사가 소네트 그룹의 모자를 판매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현재 11,000명 정도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조병태 회장은 글로벌 경영전략으로 ‘4P+1P’를 설명한다. 제품(product), 유통경로(place), 판매가격(price), 판매촉진(promotion) 외에 사람(person)을 강조했다. 누구와 함께 일을 하느냐, 어떤 고객에게 파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모자를 구매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부 고객이며, 중간에서 판매해주는 사람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개발과 시장 조사, 아이디어 수집, 생산 기술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자신만의 고객 만족 관리 노하우인 ‘10-10-10’ 원칙에 대해 고객을 잡는 데 10, 고객을 놓치는 데 10, 잃어버린 고객을 다시 잡는 데 10년이 걸린다.”고객이 없이는 회사가 있을 수 없다. 고객의 불만을 조사, 연구해야 하고, 늘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병태 회장은 모교인 경희대 학생들의 해외 진출을 위해 월드옥타(World-OKTA) 프로그램을 경희대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월드옥타 프로그램에 대해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CEO들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강의 및 인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해외 취업까지 연결하는 프로그램이라며 이 프로그램을 경희대에 처음으로 신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 Federation of Overseas Korean Traders Associations)의 산 증인으로서, 뉴욕에서 처음으로 전 세계 한인 경제인을 모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했다.

 

1981년 설립된 세계한인무역협회는 전 세계 72개국 7천여 명의 재외동포 CEO들과 차세대 경제인 2만여 명으로 구성된 재외동포 경제인 단체로, 한민족 해외 경제네트워크로서 고국의 경제발전과 수출촉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조병태 회장은 1996년 제9대 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그가 유독 많이 받는 질문은 여러 아이템 중에서도 왜 모자를 선택한 이유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체육교사 시절 100% 운동장에서 수업을 해야 했기에 모자를 애용했다.”형이 창립한 섬유회사에서 제일 많은 원단을 가져가는 회사가 모자회사인 것을 보고 모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우물을 버리지 말고 끝까지 파다보면 큰 샘이 솟아날 것이다.”라며 꾸준한 노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한편, 조병태 회장은 현 소네트 그룹 회장으로서 세계한인무역협회 명예회장과 경희 미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희대 체력관리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까지 성수중 · 신용산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풍실업 뉴욕 지사장을 역임하고, 1976년 토마스 C. 프로모션을 설립, 이후 소네트로 이름을 변경했다. 1991년 뉴욕한인경제인협회 회장, 1995년 밝은 사회 국제클럽 뉴욕지회장(UN산하 기구), 1996년 제9대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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