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3] 뉴욕 여행 3과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2/12 [13:10]

[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3] 뉴욕 여행 3과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2/12 [13:10]

 

뉴욕 여행 3과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 김선옥 원광대 교수    

 

허드슨 강과 이스트 강이 합류하는 맨해튼 섬 남쪽 연안에 위치한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 그곳은 월가와 세계무역센터가 있는 미국 경제의 심장부이다. 9.11 테러의 표적이 되었던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는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을 뜻하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로 호명되었고, 그 부지에 9.11 추모공원과 새로 건립된 세계무역센터 건물들이 보란 듯이 서 있다.

 

쌍둥이빌딩 자리에 조성된 그라운드 제로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희생자들의 눈물처럼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먹먹해져 숙연해진 마음으로 추모공원을 나와 브루클린 다리로 향했다.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뉴욕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이 현수교는 고풍스런 다리와 조화를 이루는 맨해튼의 멋진 도시 전망으로 유명하다.

 

▲ 1869년에 착공해서 16만에 완공된 브루클린 다리는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이어주는 가장 긴 다리로 많은 영화에 등장했으며 복층으로 구성되어 보행자들은 2층 중앙으로 걸을 수 있다.    

 

 

이스트강 위로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다리 건설이 시작된 1869년부터 완공되기까지 16년 동안 건축가 존 로블링(John A. Roebling)과 그의 아들을 포함해서 스무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사고로 희생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힘겨운 공사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다리 완공 후 중국 노동자들이 뉴욕시로부터 근처 부지를 허가받아 장사를 시작하면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니 브루클린 다리를 거닐다가 그곳에 들러 구경도 하고 식사도 하면 제격이었다.

 

 

로어 맨해튼에서는 남쪽 끝으로 걸어가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는 것이 좋겠지만, 그곳은 혼잡을 피해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나았다. 대신 지하철로 미드타운에 있는 센트럴 파크로 가서 휴식을 취하며 J. 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51년에 출간한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뉴욕 시민의 쉼터로서, 또 유명한 관광지로서 센트럴 파크의 명성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그곳은 내게 관광지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가는 동안 가슴이 설레었다.

 

▲ 센트럴 파크 중간 지점에 있는 ‘셰익스피어 가든.’ 오두막 옆으로 예쁜 정원이 이어져 있다.     ©

 

호밀밭의 파수꾼은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사립 명문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가 센트럴 파크 근처에 있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23일 동안 싸구려 호텔과 술집, 극장, 나이트클럽 등을 배회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사람들과 만남을 시도하지만 환멸과 공허함 속에서 서부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여동생 피비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겉보기에 크게 흥미로운 사건도, 일관성 있는 극적 서사도 없는 만 열여섯 문제아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50, 60년대 미국 기성세대의 순응주의와 안일한 타협에 저항했던 성난 젊은이들의 경전이 되었다. 오죽하면 1980년 비틀즈의 존 레논(John Lennon)을 총으로 쏘았던 그의 광팬이 자신이 그를 왜 죽였는지 알고 싶으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보라고 했을까. 그는 존 레논을 총으로 죽인 뒤 경찰이 체포하러 올 때까지 이 책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사진출처=구글)    

 

세계적으로 6천만 부 이상이 팔린 초베스트셀러 고전으로서 이 작품을 읽지 않았던 이들도 그 제목만큼은 분명 익숙하리라. 50이 넘은 지금 나는 거짓과 물욕으로 찌든 어른 세계에 진입하기를 거부하고 어린이의 순수함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를 꿈꾸는 주인공 홀든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렵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 처음 읽었던 사춘기 시절에도 나는 학교 선생님들을 훌륭한 분들로 여기던 순응적인 범생이였던 터라 학교와 선생님들과 동료 친구들에게 품는 홀든의 혐오와 반감에 다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그가 지키고 싶었던 인간의 순수함에 대한 갈망만큼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특히 여동생 피비에게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밭 가장자리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너무 좋아서 나와 성향이 다른 그 냉소어린 반항아에 친밀감을 느꼈었다.

 

이 한 권의 소설로 너무나 유명해진 샐린저는 홀든처럼 거짓과 허영, 혹은 상업주의로 가득한 현실 세계가 싫었는지 절필한 채 철저히 은둔자의 삶을 살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월가 역에서 레드 라인 지하철을 타고 ‘59 St-Columbus Circle’역에서 내리니 바로 공원 남쪽 출구가 시작되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나는 센트럴 파크 남쪽에 있다는 오리가 있는 연못부터 찾았다. 홀든이 학교에서 낙제로 퇴학당하고 속물적인 룸메이트와 몸싸움을 벌인 뒤 밤기차로 뉴욕에 와서 호텔로 가는 중에 택시 기사들에게 이 연못에 대해 연거푸 질문하기 때문이다.

 

▲ 센트럴 파크 남쪽 입구에 있는 연못.    


그가 택시 기사들에게 연못의 오리들은 겨울에 어디로 가느냐고, 누군가 혹시 그들을 동물원에 데려다 주냐고 묻자 택시 기사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거나 심지어 자기가 왜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한 허영과 가짜의세계에 진입한 어른들에게 당연히 그 질문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으리라. 내가 그곳을 방문한 8, 오리들은 한가롭고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고 공원 바깥쪽 고층 건물을 배경으로 하는 연못의 풍경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홀든의 방황을 떠올리며 연못에서 헤엄치는 오리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나도 겨울에 오리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작품 속에서 홀든이 추위 속에서 거리를 방황하다 연못에 오리가 있는지 한밤중에 확인하러 오지만 반쯤 얼어붙은 연못에는 오리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연못 가까이에는 뉴욕 거리를 방황하던 홀든이 서부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여동생 피비와 만났던 동물원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도 있었다.

 

▲ 센트럴 파크의 우측 경계인 5번가에 면해 있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동물원에서 위쪽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다.    

 

홀든이 동물원을 나와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때묻지 않은 어린 동생의 순수함을 행복하게 바라보던 장면이 떠올라 회전목마를 찾아보려 했지만 눈에 띄지 않아 바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향했다. 말 그대로 단체 관광객들에게 떠밀려입장한 그곳은 세계 3대 박물관의 명성에 걸맞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다 돌아보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했다. 두 시간 가량 관람한 뒤 공원으로 다시 나와 아름드리나무들과 동화나라에 온 것 같은 예쁜 성과 정원들과 호수들을 구경하며 북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대로 흑인 거주 지역인 할렘까지 걸어볼 생각이었다.

▲ 센트럴 파크의 중간 지점에 있는 벨베데어 성(Belvedere Castle)    

 

 

현실의 요구에 순응한 기성세대가 되었고, 물질과 소유도 원했고, 때로는 속물적이기도 했을 나. 홀든의 눈에 나는 어떤 어른으로 비칠까. 나무 그늘을 걸으며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그 반항아의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전적으로 순수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사람이 있을까? 순수와 경험의 세계는 공존할 수 없는 걸까?

 

 

 

 

원광대 영어교육학과 김선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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