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숙의 지하철을 타면서8] 싸움과 소통

본능을 찌르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모습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2/25 [22:09]

[전성숙의 지하철을 타면서8] 싸움과 소통

본능을 찌르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모습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2/25 [22:09]

 

▲ 싸움이 없다면 본능적인 타인의 욕구를 알기 힘들고, 숨겨져 있어 그 사람의 마음의 길을  찾기 힘든 부분이 있다.     ©전성숙 기자

 

[전성숙의 지하철을 타면서8] 싸움과 소통

 

나는 싸움을 잘 못한다. 아니, 많이 안 해 봤다고 하는 편이 맞을 거 같다. 착해서가 아니라, 막연히 싸움은 나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싸움의 기술이 없다. 말 대거리를 따박따박하며 잘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은근히 부럽고 대신 싸워 주는 거 같아 마음이 시원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반 친구와 싸운 기억이 떠오른다. 상대는 조금은 대가 센친구였다. 다부진 친구의 말코가 어렴풋이 그려진다. 사는 처지가 비슷한 친구여서 꽤 친하게 지내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싸우게 되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친구는 자신의 상황과 심리 상태를 정확히 잘 정리해서 나에게, 또 싸움 구경하러 온 친구들에게 전달했다. 누구나 공감이 갈 만한 이유와 힘 있는 말소리로 좌중을 이끌었다. 당시 나는 친구의 말을 경청하는 꼴이었다.

 

어떻게 그 싸움이 끝났는지 기억은 없다. 어줍잖게 내 옆에서 편들어 준 친구는 상황을 파악하고, 무시하고 가자고 종용해서 다행히 그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나도 뭔가 얘기하고 싶었다. 마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그래서 정문 근처 운동장 끝자락에서 뒤를 돌아보며 친구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외침은 알 수 없는 괴성이었다. 정확히는 돼지 멱을 따는 소리였다.

 

그때 절망적으로 돌아서며 알게 되었다. 나는 싸움에 대한 능력이 없구나.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 내가 너무나 비참했다. 그리고 이런 싸움을 하는 것은 나에게 철저히 불리하다는 것과 질 싸움은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다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리판단이 잘 하는 능력은 있었구나.

 

그러나 나이가 들어 보니, 싸움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싸움도 소통이기 때문이다. 다분히 급박한 순간에 본능적으로 마음을 표현하거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싸움의 상황이 주는 매서운 기운과 압박감이 있겠지만, 이를 뚫고 나오는 서로의 본능적인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증기 기관차에서 수증기가 끓다 나오는 세찬 기차 소리와 같은 것이다. 그 소리를 통하여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알아야 그에 맞춰 소통할 수 있다. 어른이 되면서 세련된 모습만 고수하다 보면 절대 알 수 없게 되는 진짜 마음일 수 있다.

 

싸움이 없다면 본능적인 타인의 욕구를 알기 힘들고, 숨겨져 있어 그 사람의 마음의 길을 찾기 힘든 부분이 있다. 싸움을 통하여 상대에게 보이기 싫은 나의 자존심이 터져 나올 수도 있고, 숨기고만 싶은 비밀이 나올 수도 있다. 꽁꽁 마음 깊이 숨겨 놓은 비밀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의 잘 정제되어 세련된 모습 속에서 숨어있을 각자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본능을 찌르지 않으면 나오지 않을 모습... 나에겐 어떤 모습이 숨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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