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의 벌거벗은 교육4] 잡채밥 삼매경에 빠지다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4/22 [14:33]

[심규진의 벌거벗은 교육4] 잡채밥 삼매경에 빠지다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4/22 [14:33]

 

잡채밥 삼매경에 빠지다

 

▲ 옆 손님과 동행한 나는 한 마디도 못하고 구경만 하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질서 속에 질서랄까. 혼돈 속에 가지런함이랄까. 불신의 늪 가운데 우뚝 서있는 신뢰의 날개 짓이랄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다. (칼럼 내용 중 일부)     © 남정현 기자


시골에 있는 한 반점. 문을 열고 들어가도 맞이하는 이 없다. 손님이 여기저기 붐비고 있는 거보니 주인이 바쁜가보다. 손님이 주방으로 달려가 직접 주문하고 물도 꺼내먹는다. 처음 접하는 신개념 서비스가 놀랍지만, 배는 채워야하니 나도 여타 손님처럼 그들의 룰(Rule)을 따랐다.

 

저기, 잡채밥 하나만 주세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대답도 없다. 주문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의문스럽지만 일단 자리에 앉았다. 정면에 걸려 있는 야시시한 달력이 참으로 예스럽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몇 편이나 보았을까.

 

거도 혹시 잡채밥 시켰는교.”

, , 맞습니다.”

 

오히려 내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이 내 걱정을 해준다. 알고 보니 본인들도 잡채밥을 주문했는데 주방에서 잡채밥스러운 요리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단다. 옆 테이블과 대동단결하여 주방으로 함께 향했다.

 

와 잡채밥은 안주는교.”

요것만 볶고 이제 할끼라예.”

빨리 좀 주이소. 배고픕니더.”

 

옆 손님과 동행한 나는 한 마디도 못하고 구경만 하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질서 속에 질서랄까. 혼돈 속에 가지런함이랄까. 불신의 늪 가운데 우뚝 서있는 신뢰의 날개 짓이랄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랐다.

 

5분 후 음식이 나왔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잡채밥 요리는 아직 시작도 안했었는데) 잡채와 자장소스를 요리조리 비벼서 크게 한 숟가락 먹었다. ‘와아!!!!.’ 세상 밖으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맛있었다. 감칠맛 나는 소스에 중국식 당면이 일품이었다. 함께 버무려진 채소도 어찌나 신선한지 그들의 향내가 콧속으로 파고드는 기분이었다.

 

허겁지겁 한 그릇 뚝딱하고, 밖으로 나와서 간판을 다시 보니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겉보기엔 볼품없고 불친절한 반점이었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음식의 맛과 주문에 대한 신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나는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일까. 내실이 탄탄한 사람일까. 잡채밥 한 그릇을 먹고 깊은 고민에 빠져버렸다.

 

 

 

심규진 작가

 

퇴근 후 글을 씁니다.

여전히 대학을 맴돌며 공부하며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꿈 꿉니다.

<어른 동화>,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내일>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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