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오래된 미래2] 1987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7/08 [15:00]

[윤관범의 오래된 미래2] 1987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7/08 [15:00]

 

▲ 아이들을 읽어내지 못한 나의 문맹을 늘 확인하는 것이다. 내일이면 저들은 다시 가면을 써야 할 터이니 이쯤에서 종례를 해야겠지. 그리고 난 본 영화나 다시 봐야겠다. 「1987」 영화에 아마 내가 나올 것이다. 그들과 함께.  (칼럼내용) 사진은 영화 '1987'     © 남정현 기자


영화 1987보셨어요?”

얘가 그 영화 제작하는데 한 축이었어요

50줄에 막 접어든 중년 사내 둘이 내 앞에 앉아 잔뜩 무게 잡으며 느릿느릿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세월이 조탁(彫琢)해 놓은 그들의 모습에 처음엔 말을 놓기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알던 미소년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영화 평론가든 잘 나가는 출판계 인사든 한때 우린 선생과 학생으로 매일 부딪치며 살았었다. 그 시절 우린 대부분 유치했지만 눈부셨고 그래서 돌이켜보면 전설같이 아련해진다.

 

1987년은 박종철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노태우 대통령 당선으로 마무리된다. 나에겐 그렇다. 처음 고3 담임을 하게 되었고 이후 전교협 태동을 위한 숨 가쁜 일정, 이한열의 죽음과 신촌 로타리 노제, 6월 항쟁과 우리 학교 3학년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집회, 노태우의 직선제 발표, 대선 감시 활동이 중간에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한쪽에선 올림픽 준비로 또 한쪽에선 민주화의 뜨거운 열기로, 또 계엄령이 선포될지도 모른다는 흉흉함과 자고 나면 그래도 봄은 올 것이라는 벅찬 기대로 하루하루가 냉온탕의 연속이었다.

 

▲ 교실에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철딱서니 없는 얼굴들이 나를 보며 주섬주섬 흐트러진 분위기를 주워 담고 있었다. 그 얼굴들 앞에 서서 그들을 둘러보며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어색한 교실의 공기를 가르며 입을 열었을 것이다. “어제가 그토록 우리가 바라던 대통령 선거였다. 그런데...” 울고 말았다. 아니 울었단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칼럼내용)     © 남정현 기자

 

그 해 12월 대선 날, 선거 감시 활동으로 신림동 골목을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보낸 후, 노태우 당선이란 신문 활자를 보고 넋이 나갔었다. 역사는 6월 항쟁을 절반의 성공이라지만 당시 나에겐 완전한 실패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했다. 쇠뭉치를 달아 놓은 듯 무거운 몸과 더 무거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철딱서니 없는 얼굴들이 나를 보며 주섬주섬 흐트러진 분위기를 주워 담고 있었다. 그 얼굴들 앞에 서서 그들을 둘러보며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어색한 교실의 공기를 가르며 입을 열었을 것이다. “어제가 그토록 우리가 바라던 대통령 선거였다. 그런데...” 울고 말았다. 아니 울었단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 그날 우셨어요. 저희들 정말 너무 놀랐거든요? 도대체 이게 뭐라고 선생님이 우는 거지? 며칠을 두고 우리끼리 참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1987년은 저희가 고3이었고 또 많은 일들을 직접 겪기도 했던 터라 이번 영화 만들면서 옛날 생각이 막 겹치기도 하고 참 먹먹해지더라고요.”

 

그랬던가? 그랬겠지. 항상 만만치 않던 선생이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으니 이게 뭐야 했겠지.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또 저만치서 솟아나기 시작한 눈물을 감추기 위해 화장실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다.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친 초로에 접어든 한 사내의 얼굴이 자꾸자꾸 젊디젊은 교사로 변하고 있었다. 쉽지 않았던 그동안의 내 삶과 또 적어도 나만큼은 쉽지 않았을 그들의 삶이, 그리고 이제 이 순간의 만남이 눈물 겨웠던 것이다. 그래 그랬었지. 우린 그때 글쎄 그랬더랬지.

 

다시 술 한 순배 돌고 출판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힘들었던 지난 이야기며 영화판 이야기며 만만치 않은 결혼 생활까지 안주가 풍성해진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목소리는 살짝 상기되어 있었고, 나도 이놈 저놈 하며 우린 낄낄대고 있었다. 한때 학생이었던 아이들과 만남은 항상 이렇다. 지네들이 어디 가? 아무리 세월이 갈아엎고 견고한 탈을 씌워 놓아도 길어 봐야 1시간이면 탈을 벗고 아이들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더불어 나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항상 웃는 얼굴에 뭐든지 잘했던 아이가 까칠한 평론가가 될지는 몰랐다. 항상 어두운 얼굴에 과묵했던 아이가 성공한 출판인이 될지는 몰랐다. 그땐 정말 몰랐다. 아이들을 읽어내지 못한 나의 문맹을 늘 확인하는 것이다. 내일이면 저들은 다시 가면을 써야 할 터이니 이쯤에서 종례를 해야겠지. 그리고 난 본 영화나 다시 봐야겠다. 1987영화에 아마 내가 나올 것이다. 그들과 함께.

 

▲ 항상 웃는 얼굴에 뭐든지 잘했던 아이가 까칠한 평론가가 될지는 몰랐다. 항상 어두운 얼굴에 과묵했던 아이가 성공한 출판인이 될지는 몰랐다. 그땐 정말 몰랐다. 아이들을 읽어내지 못한 나의 문맹을 늘 확인하는 것이다.  (칼럼내용)  © photo by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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