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오래된 미래3] 가족의 탄생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8/06 [13:37]

[윤관범의 오래된 미래3] 가족의 탄생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8/06 [13:37]

 

가족의 탄생

 

▲ 삶의 조건이 쉬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가족은 하나 더 늘어 넷이 되었으니 어쩌면 그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을지도 모르겠으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여전히 씩씩하다. 밝은 그의 모습이 힘든 삶에 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가 대견스럽다.  (칼럼 본문 내용)   © 남정현 기자

 

6년 전 5월 어느 날 오후, 젊은 부부 한 쌍이 교무실에 들어와 멈칫거리더니 내 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부인은 아기를 안고 남편은 작은 화분을 들고 있었다. 낯이 익었다. “! ...” 내 앞에 펼쳐진 상황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살다 보면 말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아주 가끔 있다. 다만 벅찬 감동이 언어를 지워버렸을 뿐이다. 지금까지 받아본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기 말이다.

 

고등학생 때 그 아이는 유명한 말썽꾸러기였다. 흡연으로 정학을 당한 적도 있었고 10년 이상 태권도로 단련된 강한 체력은 남자아이들을 능가할 정도였으며 교내에서 벌어진 모든 폭력에는 그 아이가 관련되어 있었다. 연극부였지만 하도 말썽을 일으켜 연극부가 해체되기도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졸업반이 되었고 담임과 학생으로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학급 구성이 마무리되었을 때 동료 교사들은 둘이 잘 만났다며 농 섞인 위로의 말을 건넸을 정도였다.

 

3월 첫 면담 때 그는 반장의 자격에 성적이 포함되는지 물었다. 교칙엔 성적 관련 기준이 있었고 처벌 경력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학급 아이들이 뽑아 준다면 나로서는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반 아이들이 그 아이를 반장으로 선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혹시 반장이 된다면 자리가 그 아이를 붙들어 줄지도 모른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예상은 빗나가고 그 아이는 반장이 되었다. 학생부에서 문제를 제기했고 담임이 모든 책임을 지는 조건부로 그 아이는 임명장을 받았다. 두 번째 예상도 빗나갔다. 그냥 담배 피고 폭력 휘두르는 반장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의 잘못된 행동이 학생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적지 않은 애를 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게 초대장을 슬며시 건넸다.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연극 초대장이었다. 지역 청소년 연극 동아리에서 그동안 활동했다는 것을 난 그제야 알게 되었다. 바빠서 가지 못할 것 같다 했지만 난 그의 공연을 보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엄석대 역이었다. 다음 날 복도에서 앞서가는 그를 불렀다. “! 엄석대돌아본 그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잘하더라. 얼굴이나 보고 가시지. 의례적인 말이 짧게 오고 갔지만 서로 하고 싶은 말은 눈으로 주고받았다. 이후 그를 대하는 나도, 나를 대하는 그도 예전과는 달라 있었다.

 

그가 지방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후 난 그를 잊고 살았다. 흰 블라우스에 치마 차림의 정숙한 아가씨가 되어 다시 나타나기까지. 졸업 작품 연출을 자기가 하였다며 초대해 그를 다시 보게 되었고 이후 매년 그가 어떤 작품을 연출하는지 알게 되었다. 가끔은 초대에 응하기도 하면서. 이후 대학원도 진학하고 교육연극을 자신의 평생 작업으로 삼는 과정도 보면서 나는 그의 변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한 청년과 함께 찾아와 주례를 꼭 맡아달라는 그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것은 이와 같은 그와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었다. 신랑은 물리학 박사로 강사를 하고 있다는데 왜 신부가 주례를 청할까? 의아한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얼떨결에 주례 자리에 서게 된 우를 범한 것이었다.

 

결혼한 지 몇 달 뒤 나를 찾은 그는 이혼을 이야기했다. 한동안 듣기만 하다 남편을 지금 부를 수 있겠냐 했더니 바로 전화를 하는 그를 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이대로 이혼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첫 주례를 한 부부 아니던가! 둘을 데리고 교외로 나가 저녁을 먹으며 그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했다. 다 들은 후 미리 출력한 주례사를 꺼내 다시 읽어 주었다.

 

결혼이란 가정을 꾸린다는 것인데, 제게 있어 가정이란 학교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배움터란 말이죠. 신랑에겐 신부가 선생님이고 신랑 또한 신부의 선생님이 아닌가, 두 사람이 만들어 가는 상황 역시 선생님이고 자녀가 태어난다면 그들 또한 두 사람의 선생님이 되는 것 아닌가. 좋은 것을 가르쳐서 선생이 아니라 내가 배우는 자세로 임하면 선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중략) 가정을 꾸리지 않았다면 배우지 못할 소중한 삶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으니 오늘 이 결혼식이란 너무나 소중한 입학식인 셈입니다.”

 

결혼식 때와는 달리 그들도 나도 주례사에 집중했다.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반드시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첫 주례였는데 그대들이 이렇게 자퇴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렇게 헤어진 지 2년 뒤 그들 가족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둘이 셋이 되어.

 

삶의 조건이 쉬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가족은 하나 더 늘어 넷이 되었으니 어쩌면 그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을지도 모르겠으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여전히 씩씩하다. 밝은 그의 모습이 힘든 삶에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난 그가 대견스럽다.

 

▲ 나와 가족이 된 지 12년 된 고양이 메이. 그 녀석이 내게 제 몸을 맡기기까지 걸린 시간과 서로를 읽어내는 순간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독해력이 좋은 고양이라며 깔깔거리는 그를 보며 우리의 독해력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칼럼본문 내용)     © 남정현 기자

 

얼마 전 그에게 고양이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나와 가족이 된 지 12년 된 고양이 메이. 그 녀석이 내게 제 몸을 맡기기까지 걸린 시간과 서로를 읽어내는 순간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독해력이 좋은 고양이라며 깔깔거리는 그를 보며 우리의 독해력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의 일상은 뜨개질과 같다. 바늘을 끼우고 돌려서 또 끼우는 무한 반복. 그러나 어느 날 옷이 되듯 가족은 그런 것이 아닐까? 살아 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하고 의사가 환자의 죽음에 익숙해지면 안 되듯 가끔은 서로를 처음처럼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다 삶을 마감할 때 그동안 다들 고마웠어.”라며 작별 인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에 완전한 가족은 없다. 모든 가족은 알고 보면 낯설다. 어떤 가족이든 가족으로 산다는 건 갈등과 이해가 에너지고 힘들 때 내 편이 되어 줄 거라는 믿음이 필수적이다. 말이 없어도 되고 때로 마음과 다른 말을 해도 괜찮다. 인다라의 구슬처럼 함께 울리는 공명(共鳴)이면 족하다. 단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둘이 셋이 되어 찾아 왔을 때 놓고 간 화분 막실나리아. 시간이 흘러 이제 많이 생장했고 더 넒은 화분으로 집도 옮겼으니 웬만한 어려움은 잘 견뎌내리란 믿음이 생겼다. 이 화분을 내게 준 그들 가족도 이와 같기를.

 

▲ 가족의 일상은 뜨개질과 같다. 바늘을 끼우고 돌려서 또 끼우는 무한 반복. 그러나 어느 날 옷이 되듯 가족은 그런 것이 아닐까? 살아 있는 건 다 손길이 필요하고 의사가 환자의 죽음에 익숙해지면 안 되듯 가끔은 서로를 처음처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칼럼본문 내용)   © 남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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