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8/06 [16:44]

[교육칼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8/06 [16:44]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

 

▲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우왕좌왕 실수 투성이로 교직의 첫 해를 보냈다. 내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그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내 기억에서는 사라져 버린 파편들을 그들은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다. 교직의 무서움. 엄중함을 다시금 느낀 순간이었다. (칼럼본문 내용)     © photo by Pixabay.com

 

 

 

얼마 전 우연히 옛 제자와 연락이 닿아서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교직을 시작하던 해에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처음에는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했지만 통화를 하다 보니 곧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이 깊은 우물에서 샘물을 퍼 올리듯이 마구마구 솟아올랐다.

 

아 그래 잘 있었니? 어떻게 살았니?”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 선생님, 선생님을 애타게 찾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규희요.” “뭐 규희? 박규희?” 나도 모르게 반가움으로 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규희의 학창시절이 내 기억에 소환되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이쁘고 활달한 친구 A와 늘 함께 다니던 규희. 친구 A에 가려져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았으나 A가 크고 작은 말썽을 피울 때면 늘 조용히 와서 친구를 변호하고 뒤치다꺼리를 하던 규희를 떠올리고 당장 만나고 싶어졌다.

 

어떤 가수가 우리 지금 당장 만나.’로 그 조급한 마음을 표현했듯이 나도 오래 된 제자를 보고 싶은 갈급함에 그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이 훨씬 지났을 텐데 그리고 내가 그 제자에게 특별히 잘 해 주었던 기억도 없는데 규희는 왜 그리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드디어 규희와 또 다른 제자를 함께 만나러 가는 날. 마치 낯선 이성과 첫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설레었다. 한편으로는 혹여 제자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 세월의 풍상을 겪은 내 모습에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지하철 역 앞을 오가는 인파 속에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선생님하고 뛰어 오는 중년의 여자들이 있었다. 한 눈에 규희와 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락 서로를 껴안은 그 순간 규희의 눈에도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카페에 앉아서 그동안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 하는 동안에 우리는 자주 웃다가 울다가 그러면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80년대 초. 한 반에 60여 명의 학생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신경 쓰기 어려웠던 콩나물시루 같았던 교실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우왕좌왕 실수 투성이로 교직의 첫 해를 보냈다. 내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 그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내 기억에서는 사라져 버린 파편들을 그들은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다. 교직의 무서움. 엄중함을 다시금 느낀 순간이었다.

 

 

선생님이 저의 고3 담임이었더라면 어떻게든 우리 부모님을 설득해서 저를 대학에 진학하게 했을 텐데.” 규희가 갑자기 가슴에 묻어둔 얘기를 꺼냈다. 그들의 학창시절은 가난했고 부모가 특별히 교육에 남다른 열정이 있지 않다면, 지방 소도시 여고를 졸업한 대부분은 거기서 학업을 끝마쳐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여고시절이 더 각별한 의미가 있고, 대학을 진학하지 못한 아쉬움이 사는 동안 늘 가슴에 응어리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또 대학의 본질이 많이 훼손되어서 그 옛날 대학이 지녔던 낭만들이 상실되었지만 가난에 의해 대학 진학이 좌절된 그들에게는 참으로 가슴 아픈 상처였다.

 

집안 사정으로 3학년 2학기에 산업체로 떠나는 취업반 (당시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도 취업반이 있었다.) 학생들을 붙잡고 언제가 형편이 풀리면 배움을 꼭 계속하거라.”는 말 밖에 해 줄 수 없었던 나는 학생들과 같이 울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선생님, 그래도 꿈 많은 여고 1학년 때 선생님을 만나 사랑도 믿음도 많이 받아서 남에게 베푸는 것도 배우고..... 착한 남편 만나 아이 키우면서 지금 조심스럽지만 행복하네요.” 그러면서 규희는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내 앞에 내놓았다. 빨간 종이에 허르스름하게 포장된 조그마한 지갑이었다.

 

이것이 뭔데?’

이건 제 아들이 오래 전 알바를 해서 첫 월급으로 제게 선물한 지갑이예요. 제게는 너무도 소중한 물건이지만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어떻게 그런 소중한 것을 받을 수 있니? 내가 해 준 것이 뭐가 있다고.”

 

손사래를 치며 몇 번을 사양했지만 규희는 선생님 받으셔요. 제게는 선생님이 그만큼 소중해요. 제가 외국에 있을 때 선생님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이렇게 나이를 먹어 선생님을 만난 것만 해도 전 너무 기뻐요.”

 

교사란 참으로 축복받은 직업이다.’ 나는 내가 학생들에게 준 사랑보다 늘 훨씬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학생들로부터 받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규희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아들곤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다. 성적이 뛰어나지도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닌 그저 착하고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았던 학생이었는데 고 1때 담임 교사였던 내가 규희의 삶 속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학생들을 성적이란 잣대로 얼마나 많이 평가하고 기억했던가? ‘그 학생은 영어를 참 잘 해서....’, ‘그 애는 몇 등급을 받아서 어느 대학에 가고....’ 등등.

 

가끔씩 일상에서 내가 했던 작은 선한 행동들이 뒤에 몇 배 더 귀한 선물로 되돌아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학생들에게 쏟은 교사의 조그마한 관심과 배려가 한창 예민하고 깨어지기 쉬운 감성을 지닌 사춘기의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규희가 준 값진 선물을 통하여.

 

칼럼니스트 조정례

 

▲ ‘교사란 참으로 축복받은 직업이다.’ 나는 내가 학생들에게 준 사랑보다 늘 훨씬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학생들로부터 받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규희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아들곤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다. (칼럼본문 내용)     © photo by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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