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양의 북다이어리 14]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고: 책임감의 제도화

‘이상한 정상 가족’(김희경, 동아시아)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8/11 [20:38]

[최미양의 북다이어리 14]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고: 책임감의 제도화

‘이상한 정상 가족’(김희경, 동아시아)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8/11 [20:38]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고: 책임감의 제도화

 

▲ 최미양 숭실대학교 교수     © 남정현 기자

 

인구절벽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나는 그저 말을 참 잘 만드네.”라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2050년 정도가 되면 저 출산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늘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 실감을 못하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과년한 딸이 둘인 친구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선택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나라 출산율이 계속해서 낮아진다는 뉴스가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었다.

 

이렇게 출산율을 걱정해야하는 나라가 태어난 아이들조차 제대로 돌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상한 정상가족의 저자는 아동의 복지를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서 이 책을 썼지만, 저자가 암시하듯이 사람들에게 아동의 최선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므로 나는 먼저 어린아이들이 한 나라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싶다.

 

우리는 아동학대로 인한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언급하기 싫지만 아이들이 굶어 죽고, 맞아서 죽고, 부모가 자살하기 전 살해해서 죽는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체벌 역시 아이들이 사회의 건강한 일군이 되는데 큰 방해 요소가 된다. 체벌은 아이들이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이상한 정상가족의 의사 아버지는 아들의 학교성적과 불손한 태도를 이유로 병원 직원을 시켜 산에 데려가 묶어놓고 때리게 했다는 일화는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그래서 저자는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들은 단지 작은 인간으로서 성인과 종류만 다른 가장 약한 자라는 논지를 펴는데 그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도덕성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저자는 체벌금지를 제도화 하자고 주장한다. 현행법처럼 막연하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고 체벌이라는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법조항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나라인 스웨덴을 예로 들면서 스웨덴 역시 사랑의 매라는 개념이 없지 않았으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하여 1970년대에 세계에서는 최초로 체벌금지법을 만들었다고 말해준다.

 

아동학대로 인한 아동의 죽음은 뉴스로 많이 접하고 있었으나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해외입양을 한다는 사실과 한국전쟁 후 시작했던 해외입양은 그 뒤로도 꾸준히 증가하여 1990년대에 최고조에 달했고 최근에 와서야 저 출산으로 인하여 그 수가 만 명대에서 천 명대로 줄었다는 기가 막히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된 데는 입양을 담당하는 기관이 민영이었고 정부는 그런 기관들에 대한 관리 감독의 의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탓이 큰 것 같다. 해외입양이 최고조에 이른 5공화국 때는 길 잃은 아이들을 발견하면 부모를 찾아주는 노력도 하지 않고 바로 입양기관이나 고아원에 데려다주는 풍조도 있었다고 하니 세계에 유래가 없는 초고속 성장을 하느라 생긴 사회적 구멍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부유한 나라가 된 후에도 해외입양이 성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혼모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입양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은 바로 정상가족에 대한 정신적 철벽이 너무 두꺼운 탓이었다. 정상가족 출신이 아닌 아이들은 손가락질 받기 쉽고 사람들은 정상가족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미혼모인 딸과 인연을 끊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 저자도 알고 나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이러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혼모에 대한 지원금을 위탁가정에 주는 지원금보다 적게 책정하는 근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제도 때문에 미혼모들은 사회적 질타 속에서도 자신의 아이를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다가도 생계문제에 부딪쳐 결국 아이를 포기한다고 한다.(저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미혼모가 되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묻는다. 어느 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인가라고? 그는 생물학적 부모들이 항상 최고의 양육자가 아닌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그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했다.) 그러나 해외입양이든 국내입양을 결정할 때 과연 아이의 입장에서 최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래서 그는 입양기관은 국가기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민간 기관은 아이들의 최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저자는 아동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전반적으로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그는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아동들을 껴안는다.)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 ‘우리의 폭을 넓히려는 교육이 공교육에 제도적으로 포함되어야 하고, <차별금지법>,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게 우리를 같이 살아가게 해주는 공감의 제도화다. 역지사지하고 공감하는 능력보다 사적 관계에서 예의, 공적 관계에선 정책과 제도가 우리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인간적인 장치다.

 

 

그렇다 아이들은 한 국가의 미래요, 인류의 미래이기 이전에 우리의 공존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깨달은 것은 바로 어른들의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외로 팔려간 아이들에게 나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사회의 책임,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도를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책임 말이다. 저자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한 아이의 불행은 마을 사람 모두의 책임임을 알게 해주었다.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 책은 재미없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그간의 궁금 점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오랜만에 등장한 책 읽은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도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후문이다.

 

▲ 이 책을 통해 깨달은 것은 바로 어른들의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외로 팔려간 아이들에게 나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사회의 책임,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도를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책임 말이다.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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