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20] ‘한니발’ 여행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미국문학기행을 마치며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9/14 [16:31]

[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20] ‘한니발’ 여행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미국문학기행을 마치며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9/14 [16:31]

 ‘한니발’ 여행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 김선옥 원광대 교수    


마크 트웨인의 고향 한니발’(Hannibal)은 톰 소여(Tom Sawyer)와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을 사랑하는 미국인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미국인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 필독서로 읽는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바로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 전체가 마크 트웨인 역사 지구로 지정된 것만 보아도 미국인들이 마크 트웨인과 그가 창조한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족 단위로 놀러와 부모들은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기고 아이들은 톰과 헉의 흔적을 가까이에서 느끼며 흥분한다. 동네 전체가 한 작가의 기념 지구가 된 곳은 아마도 한니발 한 군데 뿐이리라. 나 역시도 어린 시절 TV에서 만화로 된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즐겨 본 데다 미국문학 수업에서 두 작품을 즐겨 읽은 터라 미국 여행 동안 미시시피 강과 한니발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

 

 

 

▲ 한니발 입구 여행안내소와 언덕에서 내려다본 미시시피 강    

 

한니발은 미주리 주도인 세인트루이스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미시시피 강변의 작은 마을이다. 버스도 있지만 하루에 한 대 꼴이어서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여행 당시 운 좋게도 내게는 자동차로 한니발까지 동행할 친구들이 있었다. 13년간 세인트루이스에서 살며 온갖 고생 끝에 조지 메이슨 대학에 임용되어 이틀 후에 그곳을 떠날 예정이었던 S40대 중반에 이웃 도시인 미주리 콜롬비아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에 들어간 J가 한니발 여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아주 오래 전 서울에서 영문과 대학원을 함께 다녔고 같은 지도교수 밑에서 논문을 썼지만 모두 영문학의 길에 회의를 느끼고 옆길로 샌 공통점을 지녔다. 셋 모두 자연건강’ ‘동양철학에 관심이 있었고, 환경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했으며, 요가나 명상 수행도 했다. 부모 도움으로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복을 누리지 못한 탓에 오랫동안 먹고 사는 문제로 발버둥거리다 40이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한 점도 비슷했다.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영문학 연구가 뚜렷한 삶의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한다고 느끼며 그녀들은 석사과정을 끝으로 영문학을 떠났고 나만 힘들게 박사논문을 끝낸 뒤 문학의 길을 접었다가 8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 미시시피 강을 내려다보며 옛 친구들과 함께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면서 공유한 경험들과 세월 속에서 검증된 관계가 주는 편안함과 신뢰감 때문이었을까. 그녀들과 함께한 한니발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광활하게 펼쳐진 중서부 들판을 가로지르며 크루즈 상태로 질주하는 자동차 안에서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수다를 떨었고, 마크 트웨인의 마을에서 오래 전 함께 미국문학을 공부하던 그 느낌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었다.

 

한니발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점심으로 먹은 샌드위치와 수프는 고급 레스토랑의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20대의 젊은 날로 돌아간 그 느낌, 이국땅에서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하는 그 편안하고 수다스러운 시간들이 특별한 맛을 더한 것이리라.

 

 

▲ 한니발 중심가에 있는 Java Jive 카페. 다양한 커피와 샌드위치 및 샐러드를 판매한다.    

 

 

76년 주기로 태양에 근접하는 핼리혜성이 출현한 1835년에 태어나 핼리 혜성이 다시 돌아온 1910년에 세상을 떠난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미시시피 강변 마을을 배경으로 그가 창조한 악동 톰(Tom)과 떠돌이 자연아 헉(Huck)은 학교라는 문명세계의 길들임을 벗어나 순수한 자연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갈망을 흥미진진한 어린 시절의 모험으로 실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톰 소여의 모험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소년들의 성장을 담은 아동소설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두 작품은 위선과 거짓, 부정의로 가득한 어른 세계를 어린이의 시선을 통해 날카로운 유머로 파헤친 사회비판 소설이기도 하다. 특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문명세계의 교화와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친 헉과 흑인 도망 노예 짐(Jim)이 함께 하는 미시시피 뗏목 여행을 통해 남부사회의 위선과 노예제도의 병폐를 신랄하게 고발한 수작이다.

 

헤밍웨이는 훗날 이 작품을 두고 미국의 현대문학은 이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흑인 노예를 백인의 정당한 소유물로 여기는 당대의 가치관에 익숙한 헉이 지옥에 갈 각오를 하고짐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장면은 인간애에 기반을 둔 진정한 양심과 도덕성의 승리를 보여준다.

 

▲ 한니발 언덕 입구에 있는 톰과 헉의 동상. 오른쪽은 길에서 마주친 톰과 베키 분장을 한 어린이들     © 남정현 기자

 

열렬한 노예폐지론자였고, 당대에는 파격적이라 할 만큼 여권운동을 지지했으며, 과학에도 관심이 많아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와 함께 실험을 즐기며 발명 특허를 내기도 했던 마크 트웨인은 시대를 앞서간 양심적 지식인이자 열정적인 개혁가이며 유쾌하면서도 통렬한 사회비판가였다. 본명이 사무엘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인 마크 트웨인은 4세에 개척민이었던 부모를 따라 한니발에 정착한 뒤 남북전쟁 전까지 인쇄공과 미시시피강 수로 안내인으로서 일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훗날 오롯이 작품 세계에 담았다. 필명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도 미시시피 강 뱃사람들의 용어로 배가 지나가기 위한 안전 수역인 물 깊이 두 길을 의미한다고 하니 한니발과 미시시피 강이 그의 작품세계의 영원한 고향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박물관으로 꾸며진 마크 트웨인의 집 일부와 노년의 마크 트웨인 (오른쪽 사진 출처=구글)     ©

 

 

20대와 30대 초반으로 돌아간 세 친구는 보살펴야 할 아이들과 빨랫감처럼 쌓인 많은 일들을 뒤에 두고 잠시나마 한니발에서 한가로운 소풍을 즐길 수 있었다. 박물관으로 꾸며진 마크 트웨인의 집과 헉의 실제 모델이 살았던 오두막, 톰의 여자 친구인 베키(Becky)의 모델이자 어른이 된 이후에도 마크 트웨인과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는 로라(Laura)의 집도 가까이 있었다. 톰과 헉이 다정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상을 지나 등대가 있는 언덕길을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미시시피 강도 내려다보인다.

 

▲ 마크 트웨인의 소년시절의 집과 헉의 실제 모델인 톰 블랭큰쉽(Tom Blankenship)의 오두막    


 

마크 트웨인 역사지구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는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과 베키가 소풍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헤메던 동굴도 있다. 나중에 톰과 헉이 그곳에서 살인자 조(Joe)가 남긴 보물을 찾게 되는 맥두걸 동굴(McDougal's Cave)의 실제 모델이니 한니발에 가시면 꼭 들러보시길!

 

마크 트웨인 동굴로 명명되는 이 작은 석회 동굴은 19세기 초에 한 사냥꾼에 의해 발견되어 한니발 주민들의 소풍장소가 되기도 했지만 후에 의사였던 조셉 맥도웰이 사들여 시신을 해부하는 실험실로도 썼다고 한다. 그러니 이 동굴이 사무엘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한니발 동네 어린이들의 으스스한 모험 장소가 되기에 충분했으리라. 톰 소여의 모험에 등장하는 맥두걸 동굴의 흥미진진한 장면을 떠올려보면 이 작품을 읽은 미국인들이 이곳을 순식간에 관광지로 만들어버린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 『톰 소여의 모험』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맥두걸 동굴의 실제 모델인 마크 트웨인 동굴    

 

옛 친구들과 함께한 한니발 여행은 유쾌한 웃음과 수다와 아쉬움으로 끝났다. 이제 각자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카톡도 있고 SNS도 있지만 그렇게 자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모두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은 언제쯤일까. 마지막 밤을 그녀들과 함께 보내고 다음날 아침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멀어져가는 세인트루이스를 내려다보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추억으로 묻히게 될 옛 친구들과의 짧고도 행복했던 만남이 마음에 남긴 아쉬운 잔상 때문이리라. 한니발에 동행해준 고마운 친구들, 먼 이국땅에서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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