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오래된 미래5] 소확행(小確幸)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10/07 [10:50]

[윤관범의 오래된 미래5] 소확행(小確幸)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10/07 [10:50]

 

소확행(小確幸)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대상이 되는 시간과 장소를 포착하는 것이다.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순간을 잘라내는 것이니 나에게 사진 찍기란 일종의 장례 의식이다. 우연히 마주쳤으나 내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았을 죽음을 카메라에 담아 암실로 들어간다. 인화지에 유령처럼 피어나는 이미지를 보며 길지 않은 부활의 순간을 즐긴다. 구경꾼이 되어 내가 박제한 것을 보며 처음 사진 찍을 때와 전혀 다른 이야기, 감정을 즐긴다. 젊은 시절 카메라를 통해 누렸던 즐거운 나의 유희는 대략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프로가 아니니 자유로웠고 결과보다 과정이, 사진보다 행위가 즐거웠으니 항상 그 자체로 만족했다.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대상이 되는 시간과 장소를 포착하는 것이다.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순간을 잘라내는 것이니 나에게 사진찍기란 일종의 장례 의식이다.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90년대 초 사진반을 지도하던 선배 교사가 퇴직하면서 사진반은 자연히 내 몫이 되었다. 암실 설치를 조건으로 사진반을 마지못해 떠안는 모습을 보였지만 내심 뛸 듯이 기뻤다. 사진반 활동은 즐거움의 폭과 깊이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혼자 하던 놀이를 비록 아이들이지만 같이 하게 되니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더욱이 사진반에 들어온 학생 중 또래보다 생각이 깊고 인문학적 소양도 높은 3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지금은 여성운동을 이끄는 K, 전대협 지도부의 핵심으로 한때 숨어지내기도 하였으나 뒤늦게 유학 가 고생하고 있는 L, 소식은 모르지만 어디에 있건 똑 부러지게 잘 살고 있을 S. 그들과 함께 출사를 하고 골목길을 주제로 사진전도 하면서 나의 사진 놀이는 풍성해졌다. 셔터를 누르면 반사경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소리. 찰칵. 때론 착각으로 들리기도 했지만 착각이면 어떠랴? 그 시절 카메라와 함께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나는 풍족했다.

 

그러나 당시를 떠 올리면 추억의 장마다 마치 인화지에 떠오르는 형상처럼 처음엔 희미하지만 점점 또렷해지는 아이가 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사진반 활동을 하였으나 교실에서 그와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그는 지금도 농담을 하지만 나도 속으론 그의 농에 동의한다. 만약 담임과 학생으로 만났다거나 교과를 매개로 만났더라면 그와 나의 관계는 사뭇 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스스럼없이 나에게 다가오고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던지며 호쾌한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학생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삶의 모든 순간을 희화화해 버리는 재주가 있어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그에게는 도무지 진지해질 수 없었다. 그가 입을 열면 모두가 그를 비난하지만 사실 애정의 또 다른 표현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해결하기 힘든 일도 그가 마구 말을 하고 웃어버리면 풀리진 않는다 해도 어쨌든 시작은 하게 되었으니까. 그는 그렇게 우리의 윤활유였다.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다. 그가 선택한 학과가 의외였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에겐 모두가 유희였을 테니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사진작가였지만 그가 찍은 사진은 평범했듯이 그도 나처럼 과정을 즐기는 이였을지도 모른다. 학문도 그의 큰 웃음을 비껴가진 못했을 것이다. 이후 학사 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대치동에 학원을 차렸으며 용케도 지금까지 15년 동안 꾸준히 꾸려가고 있다.

 

지난달 그를 만났다. 그와 만날 땐 항상 누군가와 함께였는데 그날은 단둘이 만났다. 둘만 있는 자리여서일까? 그도 이제 나이 들어가는 건가? 웃음소리는 작았고 제법 진지한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수천만 원 적자로 고생하다 이제 겨우 만회했다는 이야기, 자궁근종으로 고생한 아내 이야기 등 묵직한 소식이었지만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를 보고 그에게도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좀 슬펐던 것 같다. “언제 사진이나 같이 찍을까?” 뜬금없는 내 제안에 그답게 망설임 없는 대답이 날아왔다. “낚시나 가죠.”

 

▲ 낚시를 하며 가장 즐거운 순간이 출발하기 전 낚시 도구를 손질할 때라 하니 낚시를 모르면서도 왠지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도 과정을 즐기는 놈이었구나.” “어 선생님, 뭔 소리래요?” 처음으로 크게 웃는 그를 따라 같이 웃으며 나는 그동안 이런 순간의 그만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일상의 무게가 버거워지면 그는 낚싯대를 싣고 바다로 간다 했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잡아 올린 물고기가 손가락 발가락 수를 넘지 못한다며 껄껄대는 그를 보며 안심했다. 낚시를 하며 가장 즐거운 순간이 출발하기 전 낚시 도구를 손질할 때라 하니 낚시를 모르면서도 왠지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너도 과정을 즐기는 놈이었구나.” “어 선생님, 뭔 소리래요?” 처음으로 크게 웃는 그를 따라 같이 웃으며 나는 그동안 이런 순간의 그만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소확행(小確幸)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요즘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한때 이 단어는 슬픈 조어(造語)라는 생각을 했었다. 현실을 저당 잡혀 미래를 보장받기는 애초에 글러 먹었으니 있는 그대로 현재를 즐기는 것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아닐까? 그러니 소확행(小確幸)이란 기를 써도 중산층조차 될 수 없는 시대에 사람들이 보이는 체념적인 자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엄혹한 이 시절에도 자기기만이나 현실의 세뇌가 아닌 현실에 뿌리내린 단단한 소확행(小確幸)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40대 중반의 성인이 되기까지 그의 삶의 역사를 가만히 곱씹어보니 소확행(小確幸)이란 결코 작은 행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낚싯대를 잡기까지 얼마나 무거운 일상의 무게를 견뎌 왔을까? 낚시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의 순간들이 응집되어 선택한 유희인지도 모른다. 소확행(小確幸)이란 결코 욕망의 포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욕망의 포기가 아니라 욕망의 통제, 자신에 맞게 욕망하고 자신의 욕망을 반성하면서 적정한 삶의 틀을 세워나가면 그 소확행(小確幸)이라는 것 가까이 두고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40대 중반의 성인이 되기까지 그의 삶의 역사를 가만히 곱씹어보니 소확행(小確幸)이란 결코 작은 행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낚싯대를 잡기까지 얼마나 무거운 일상의 무게를 견뎌 왔을까?  © 남정현 기자

 

집에 돌아와 보이차를 우리는 오후, 소소하지만 확실히 즐거운 나의 오후, 찻장 문을 열면 훅 밀려오는 차 익는 냄새, 손에 익은 다구를 늘어놓고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무정형으로 피어나는 김을 바라보다 차 한 잔 입에 머금으면 넉넉한 오후의 햇살이든 무채색의 빗소리든 다 좋다. 목 저 너머 계속 피어나는 후감(後甘)처럼 한동안 따뜻하다.

 

자본의 논리에 오염된 이 시대의 소확행(小確幸)을 생각하면 다시 나의 따뜻함에 죄책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나의 따뜻함을 용서하기로 하자.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으니. 그래서 내가 우려내는 것이 차만은 아닐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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