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오래된 미래6]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11/06 [20:54]

[윤관범의 오래된 미래6]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11/06 [20:54]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윤관범

 

암전. 그리고 페이드인. 마지막 장()이다. 서서히 진행되던 극의 흐름이 빨라진다. 관객들의 웃음이 터져 나오고 그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 뭉클뭉클 솟아오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드니 그냥 눈물이라 하자. 비바체에서 모데라토 그리고 안단테. 독백으로 극은 막바지를 향해 흐른다. 음악이 깔리고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르느라 헉헉거리다 결국 연극이 끝나기 전 황급히 객석을 빠져나온다. 대학로 오후의 눈부신 햇살에 널뛰기하던 나의 감정을 널어 말린다.

 

 

▲ 5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 연습하며 겪었던 고통과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못했을 많은 감정의 기복들. 설명할 수 없지만 느껴지던 매 순간의 야릇한 초조함. 이 모든 것이 버무려져 막연히 그리던 그림을 완성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칼럼 내     ©남정현 기자

 

 

20019, 바탕골소극장에서 우리 학교 아이들의 공연을 지켜본 나의 기억이다. 기억을 더 더듬어 보자. 감정을 추스르고 분장실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우 몰려온다. 모두가 눈물범벅이다. 다시 치미는 울음을 호통으로 다스리며 뒷정리를 독려한다. 무대를 치우고 배우는 분장을 지우고 나는 객석에 앉아 울음을 떠올렸다. 아이들의 울음, 그리고 나의 울음. 모든 울음엔 아픔과 슬픔이 존재한다. 벅찬 감동이나 기쁨의 눈물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5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 연습하며 겪었던 고통과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못했을 많은 감정의 기복들. 설명할 수 없지만 느껴지던 매 순간의 야릇한 초조함. 이 모든 것이 버무려져 막연히 그리던 그림을 완성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난 당시 우리들의 울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7년 동안 연극반 지도교사를 하면서 매년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그러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동료 교사들 또 학부모들과의 미묘한 대립, 역할 분담에 따른 신경전과 아이들 추스르기, 대본 속 숨은그림찾기, 무엇보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깨뜨리기 등. 연습하다 너무 늦어 학교에서 아이들과 같이 자는 일도 가끔 있었다. 그러면 그냥 잠만 잤겠는가? 어둠 속 무대 위 둥글게 누워 서로 내밀한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때론 웃고 때론 울다 잠이 들곤 했다. 그러니 공연이 끝나면 우린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가족이 되었음을 확인하곤 했다. 함께 한 농밀한 시간이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한꺼번에 몰려오니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겠는가? 그렇게 1년에 한 번씩 진한 눈물을 흘렸지만 2001년 공연이 그리고 그때의 아이들이 나에게 특별했던 건 아마 마지막 공연이라 내심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학교에서 다른 일을 맡아 주었으면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매년 쌓여가는 타성과 욕심이 연극과 헤어진 가장 큰 이유였다.

 

그때 그들은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은 자기들 모임에 나를 끼워 준다. 3명의 주부, 소방공무원, 촬영감독, 자영업자, 그리고 나머지는 회사원. 이젠 그렇게 각자의 연극을 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면 우린 바로 과거로 돌아간다.

 

▲ 영화와 달리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실수가 있어도 그냥 가야 하는 아날로그. 맡은 배역에 충실하되 배역과 나는 엄연히 다르다는 깨달음. 그러나 무엇보다 모든 대사를 다 꿰뚫고 있는 배우들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대사를 처음 듣는 것처럼 잘 들어야 하듯...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서울 대표로 전국청소년연극제에 참가했던 이야기, 화려한 자유소극장 무대와 분장실 이야기, 나는 몰랐던 그들만의 숨은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이야기는 매년 살이 붙어 이젠 무엇이 진실인지 아리송하지만 마지막은 항상 똑같다. 고교 시절 그때 그 경험이 자신들에겐 아직도 전설 같지만 참으로 소중한 삶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이다. 귀한 친구들과 함께. 나에게도 그때 그 시간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마주쳤던 몇 안 되는 삶의 정수였다고 말 하고 싶으나 그냥 미소로 내 마음을 감춘다. 그들과의 인연이 아직도 내 삶의 소중한 재료인 것을 그들은 모른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좀 더 극적인 순간을 위해 잘 갈무리해두는 것이다.

 

흔히 삶을 연극에 비유하기도 한다. 영화와 달리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실수가 있어도 그냥 가야 하는 아날로그. 맡은 배역에 충실하되 배역과 나는 엄연히 다르다는 깨달음. 그러나 무엇보다 모든 대사를 다 꿰뚫고 있는 배우들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대사를 처음 듣는 것처럼 잘 들어야 하듯 우리도 살면서 절대 사람이나 일상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점에서도 삶은 연극이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나의 연극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나를 잃지 않은 채 내가 맡은 배역을 잘 드러내고 있었을까? 익숙한 사람이나 일상도 가끔은 처음처럼 낯설게 읽어내고 있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연극이 끝나면 난 다시 벅차게 울 수 있을까? 아니 나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울음으로 나의 연극을 배웅해 줄 이가 있을까? 이 또한 욕심일 수 있으니 그저 내 연극에 집중하는 것이 정답이리라. 아직은 더 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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