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오래된 미래7] 아름답다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12/04 [14:01]

[윤관범의 오래된 미래7] 아름답다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12/04 [14:01]

 

아름답다

 

아직 해뜨기 전이었지만 창은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정상까지 겨울 산행 이어 새벽까지 술자리. 졸업을 코앞에 둔 고등학생들이라 모두 익숙하지 않았을 터 아직도 자고들 있는지 리조트 안은 조용했다. 그대로 자리에 누워 일정을 점검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방을 정리하고 나가보니 한 아이가 조리기구를 꺼내 놓고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계란말이 등 반찬을 준비하는 흐름과 도구를 다루는 자연스러움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그제야 친구들과 똑같이 마시고 놀면서도 틈틈이 안주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챙기던 지난밤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 꼭 엄마 같네.” “쟤 별명이에요.” 어느새 나온 아이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는 그냥 빙긋이 웃으며 조용히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간간이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시키며.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언니가 그동안 고생이 많았거든요. 지금 병원에 있는데 선생님 이야기 가끔 해요. 병원에 한 번 가보실래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얼굴이 떠오르며 그동안의 무심함에 부끄럽고 미안했던 것 같다. 과거 우리의 추억과 내 기억 속 그 아이의 모습을 장문의 편지로 정리하여 그와 함께 병문안하였다. 루푸스. 영문도 모른 채 몸의 반란을 다독이며 입 퇴원을 반복하며 살았단다. 비쩍 말라 큰 눈만 더 커진 그 아이, 과도하게 반가워하며 부러 큰 목소리로 학창시절을 늘어놓는 그 아이 앞에서 배 가까이 더 살아온 시간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주일이나 지났나? 그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예견한 걸까? 날 병원으로 안내했던 그는 장례식장에서도 묵묵히 필요한 일을 하며 선배 언니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다. ‘하나의 영혼을 위해 신발을 벗고 잠시 영혼이 되어주는 일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의 그늘진 얼굴과 문상객을 돌보는 그의 어른스러움 앞에서.

 

겨울 한라산은 하얗다. 하얀 겨울 산에선 나무 그늘도 하얗다. 흰 그늘을 보니 그가 떠올랐다. 그가 서울의 직장을 정리하고 제주 애월 근처 한 카페에 매니저로 내려온 게 얼마 전 일이었다. 연락하고 동료와 함께 그를 찾았다. 여럿이 함께하는 자리라 차분하게 그의 근황을 들을 수는 없었으나 특유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은 확인할 수 있었다. 갓 부임해 일면식도 없는 동료 교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짬짬이 카페 분위기도 다독이며 자신의 공간을 살려 나가는 그의 모습과 더불어. 그날 대화는 생각나는 게 없다. 단 숙소로 돌아가는 우리를 배웅하러 나온 그의 모습은 지금도 강렬하다. 바닷바람에 펄럭이던 흰 블라우스. 그리고 햇빛 속 환한 미소로도 감출 수 없는 그의 그늘. 김지하가 말했던 흰 그늘, 윌리엄 블레이크가 노래했던 Higher Innocence를 난 그의 그늘에서 만난다.

 

위 세 에피소드 속 그는 동일인물이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살림을 도맡았고 중학교 2학년 때 IMF 사태를 겪었던 그래서 부모님의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대한민국 30대 젊은이. 그가 겪어낸 어려움이 우리 사회에서 드문 것도 흔한 것도 아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있는 그의 삶의 모습과 내가 좋아하는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흰 그늘은 쉬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날 대화는 생각나는 게 없다. 단 숙소로 돌아가는 우리를 배웅하러 나온 그의 모습은 지금도 강렬하다. 바닷바람에 펄럭이던 흰 블라우스. 그리고 햇빛 속 환한 미소로도 감출 수 없는 그의 그늘. 김지하가 말했던 흰 그늘, 윌리엄 블레이크가 노래했던 Higher Innocence를 난 그의 그늘에서 만난다. (칼럼 내용)  © 남정현 기자

 

대학 졸업에 6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고 얼마 전에야 학자금 융자 상환이 끝났으며 지금은 대학원 학자금 융자를 갚고 있단다. 보증금 3000, 월세 70을 감당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을 부모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감탄하는 것은 이런 생존력이 아니다.

 

그가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있는 그대로 그의 삶을 알고 있는 친구들도 많지 않다. 그가 내색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삶의 무게로 이지러진 모습을 그에겐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회 활동도 하였고 나와 연을 맺게 된 연극부 활동도 열심이었으며 비록 월세지만 사는 곳도 정갈하게 꾸밀 줄 안다.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그는 항상 주변을 챙기고 당당하다. 문득문득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막막하기도 하지만 그는 독서 모임도 참석하랴 석사 논문도 쓰랴 항상 바쁘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마냥 어둡기만 하지 않은 까닭이다. 언제 보아도 그는 항상 그답다. 늘 속으로 삭이지만 그를 보면 항상 해주고 싶은 말. “아름아! 너 참 아름답구나. 아름다워.” 언제나 아름답게 사는 그를 보며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숙제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 사회를 새롭게 조망하게 된다.

 

▲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그는 항상 주변을 챙기고 당당하다. 문득문득 앞날에 대한 두려움에 막막하기도 하지만 그는 독서 모임도 참석하랴 석사 논문도 쓰랴 항상 바쁘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마냥 어둡기만 하지 않은 까닭이다. 언제 보아도 그는 항상 그답다.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세대론에 빠져있는 요즘 우리 사회. 특히 청년세대에 대한 담론이 과도하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을 과연 청년 문제로 한정할 수 있을까? 그들의 어려움을 다른 세대 탓으로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계급, 젠더, 지역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세대론으로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마다의 정치적, 경제적 이점을 위해 청년의 삶을 볼모로 삼는 일은 부끄러운 짓이다. 나이든 탓에 때로 청년들에게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들답게 살며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을 응원하며 혹 도와달라 요청해 온다면 슬며시 그들을 밀어주는 것이 좀 더 살아온 사람들이 할 일 아닐까?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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