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오래된 미래8] 아웃사이더(Outsider)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0/01/02 [19:11]

[윤관범의 오래된 미래8] 아웃사이더(Outsider)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0/01/02 [19:11]

 

아웃사이더(Outsider)

    

▲ 병든 문명 속에서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 아웃사이더.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온갖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낮은 역치(閾値)의 예민한 수신기, 아웃사이더. 나이가 들며 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다만 동경했던 것이라 정리했지만 그 단어를 보면 지금도     ©남정현 기자

 

터울이 많이 지는 형 둘과 함께 한 나의 유소년기는 나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710년 차이가 나는지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게 차례가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친척 어른들이 의례적으로 물어보는 질문도 형들에게서 끝나거나 간혹 내 차례가 되어 미소로 대답을 시작할라치면 어른들은 이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있기 일쑤였다. 형들의 반응을 관찰하며 내 생각을 덧입혀 그럴싸한 답변을 완성해도 친척들은 돌아간 뒤였다.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생각만 곰삭았던 나의 유년기 그리고 소년기.

 

콜린 윌슨이 아웃사이더를 저술하던 비슷한 나이에 그의 책을 접하고 어린 시절 나의 숙제가 많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유치한 유희였지만 나의 정체성을 황야의 이리에서 아웃사이더로 바꾸는데 서슴지 않았다. 병든 문명 속에서 자기가 병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 아웃사이더.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온갖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낮은 역치(閾値)의 예민한 수신기, 아웃사이더. 나이가 들며 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다만 동경했던 것이라 정리했지만 그 단어를 보면 지금도 뭉클해진다. 그리고 주변에서 간혹 만나게 되는 아웃사이더에게서 나의 흔적을 찾게 된다. 그러니 과거에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의 경우엔 말해 무엇하랴.

 

20여 년 전쯤의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서는 나에게 동료가 전화기를 건넸다. 국립의료원 정신과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1년 전 가르쳤던 아이의 이름을 대며 지금 입원해 있는데 한 번 그 아이를 만나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의사와 약속 일시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걸음걸이까지 좋아하며 무척 따르던 아이였다. 아파서 휴학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정신과에 입원한 것까지는 몰랐었다. 호기심도 많고 영민하며 도발적일 만큼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던 아이였다. 그런 사람이 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된 것일까? 그의 병인(病因) 중에 내가 있어 의사는 나에게 연락했던 것일까?

 

다음 날 병원으로 향하며 그와의 시간을 곱씹어 보았다. 그와 함께했던 독서 모임, 친구들과 집에 놀러와 나누었던 음악과 책 이야기, 수업시간에 보았던 그의 정동(情動). 나에게 걸어오는 그는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다. 낯선 길을 걷다 마주친 막혀 버린 늪. 병원 뜰 벤치에 앉아 의례적인 말만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날의 대화는 내 기억에 없다. 늦은 오후 마지막 햇살과 어둑한 그의 얼굴, 그리고 어눌한 그의 말투에 뻐근했던 내 심정만 기억할 뿐이다. 아마 약 때문이었겠지. 너무 깊이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생각하는 그를 약이 풀어헤친 거겠지.

 

1년 뒤 그는 복학했고 이후 2년 동안 교실에서 그리고 내가 지도하던 동아리에서 함께 지냈다. 서로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그의 병력을 몰랐으면 더 좋았을까? 내가 모른다고 생각했으면 그도 더 편했을까? 문신처럼 너무나 또렷한 시간을 공유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다. 때론 야단도 치고 때론 중책도 맡겼지만 난 늘 그를 살폈다. 그가 아웃사이더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확신을 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웃을 때도 없어지지 않는 그늘이 항상 마음에 걸렸으나 그는 별 탈 없이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 진학하였다. 그가 선택한 전공이 그의 신나는 놀이터가 되길 바랐다. 그의 갈증을 풀어주는 감로수가 되길 바랐다. 아웃사이더를 넘어서는 발판이 되길 바랐다.

 

대학 시절에도 졸업 뒤에도 간혹 그를 보았으나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점점 짙어져 갔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편치 않아 보였다. 어딘가에 자신을 숨기고 사람들과 사람들 속의 자신을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다. 비약이 심했고 예리하게 날 선 감정 때문에 주변을 긴장시키기도 하였다. 언젠가 그런 그에게 면박을 준 일이 있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이런 나의 솔직함이 오히려 그에게 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이후 그를 볼 수 없었다. 가끔 그의 근황이 궁금하긴 했으나 그의 친구들도 그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다.

 

그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 건 2년 전 메일함에서였다. 다시 입원했었다는 이야기, 공무원 시험 준비와 포기, 힘든 일상 등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절연된 시간이, 세상에 대한 거부와 동시에 함께 섞이고 싶은 그의 모순이 보이는 듯했다. 나의 착각일 수도 있으나 그의 메일에서 읽어낸 행간의 감정은 그러했다. 건조한 답장을 보내고 가끔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1년에 한두 번 만나기도 하면서.

 

지난달 그를 만났다. 와인 탓이었을까? 난 처음으로 그의 아픔에 대해 물었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대답을 들었고 그의 아픔에 대한 내 생각을 들려주었다. 축복일 수도 있다고. 그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 했다. 취직도 했고 틈만 나면 홍대 앞 클럽에서 죽치며 아티스트들과 어울리기도 하며 웹툰 작가의 꿈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부지런히 손을 놀리기도 한단다. 그가 꼭 웹툰 작가가 되었으면 한다. 아웃사이더에겐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행동 방식이 꼭 필요하니까.

 

▲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아웃사이더는 공부하는 자다. 그가 공부하는 목적은 각(覺)이다. 병 들었음을 깨닫고 아웃사이더가 되었으나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아니기를 바란다. 아웃사이더임을 바라지 않고 일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범인이 되기도 바라지 않는다면 깨닫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아웃사이더란 어휘를 이제는 거의 입에 올리지 않으나 개념은 나에게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아웃사이더는 공부하는 자다. 그가 공부하는 목적은 각()이다. 병 들었음을 깨닫고 아웃사이더가 되었으나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가 아니기를 바란다. 아웃사이더임을 바라지 않고 일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범인이 되기도 바라지 않는다면 깨닫는 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감정의 문턱이 낮아 너무도 많은 것에 부대끼나 그 문턱 스스로도 넘나들며 내다 버릴 것은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유역(踰閾)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가끔은 세상의 부조리가 혹 나의 부조리는 아닌지 안도 세심히 살피면서 말이다. 올해는 그의 웹툰을 볼 수 있을까? 그가 풀어낼 세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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