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교수의 영미단편소설 읽기1] 케이트 쇼팬의 “한 시간의 이야기”(The Story of an Hour)

사랑보다 소중한 것, ‘존재의 자유’: 케이트 쇼팬의 “한 시간의 이야기”(The Story of an Hour)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0/08/05 [14:53]

[김선옥 교수의 영미단편소설 읽기1] 케이트 쇼팬의 “한 시간의 이야기”(The Story of an Hour)

사랑보다 소중한 것, ‘존재의 자유’: 케이트 쇼팬의 “한 시간의 이야기”(The Story of an Hour)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0/08/05 [14:53]

 

사랑보다 소중한 것, ‘존재의 자유’:

케이트 쇼팬의 한 시간의 이야기”(The Story of an Hour)

 

▲ 원광대학교 영어교육과 조교수 


스마트폰만 열면 온갖 재밌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장편소설을 읽자고 제안하기는 머쓱하다. 긴 작품이어도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은 알아서 찾아 읽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도 공부할 겸 초스피드 시대에 어울리는 짧은 영미단편소설을 읽고 스쳐 지나가는 삶의 단편들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은 그다지 나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영어 공부에도 제격이고, 짧지만 깊이 있는 삶의 화두를 던지는 좋은 작품들이 너무 많다. 나는 운 좋게도 학생들에게 이 영미 단편소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어 학기마다 그들과 함께 좋은 작품들을 골라 함께 읽고 토론하고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올봄 영문학을 처음 접하는 1학년 학생들을 위해 단편소설 몇 편을 고르면서 수업에 넣을까 말까를 고민했던 작품이 하나 있다. 케이트 쇼팬(Kate Chopin)한 시간의 이야기”(The Story of an Hour). 원작이 세 쪽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인데다 문장도 간결하고 스토리도 흥미로워서 두 시간 안에 작품을 함께 읽고 토론까지 할 수 있는 수업 친화적인작품인데 왜 망설여졌을까? 작년 3학년 수업 토론 시간에 이 작품을 읽고 여주인공의 감정 변화에 대해 남학생들이 느끼는 불편한 반응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 충분히 이해한다. 여성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라든지, 아내와 엄마 역할 외에 선택지가 없었던 19세기 여성의 입장이라든지, 엄격한 가부장제 환경을 고려하면서 여성의 내면을 관찰해야 한다는지 그런 부연 설명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 잘 이해한다. 왜냐하면 여성 주인공이 자기를 애틋하게 사랑했던 남편이 열차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명백히 해방감, ‘자유가 가져올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해마시라! 그녀가 남편의 죽음 자체를 기뻐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녀는 소식을 듣자마자 먼저 슬픔으로 엉엉 울며 자매 품에 쓰러진다. 그러나 소나기가 지나가듯, 한 차례 요란한 슬픔이 지나간 뒤, 이른 봄 생명으로 피어나는 찬란한 바깥 풍경처럼 그녀는 서서히 슬픔을 밀어내는 괴물 같은기쁨이 의식의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을 두렵지만 분명하게 느낀다.

 

아무리 억압적 상황이었대도 그렇지, 어떻게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희열을 느낀담. 못된 여자야. 게다가 자기를 살뜰하게 사랑해준 남편이 죽었는데...” 조별 토론 사이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말들이었다. 토론 뒤 이어진 남학생들의 발표에서는 더 뚜렷한 반감이 느껴졌다. 그런 느낌 충분히 이해한다고 공감해 주었다.

 

도대체 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 19세기 여성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에 자신에게 닥칠 불행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대신 이 괴물같은 기쁨”(a monstrous joy)을 느꼈던 것일까?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녀는 종종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가끔은 남편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그게 뭐가 중요했던가! 사랑이라는 거, 그 해결되지 않는 미스터리,” 그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갈망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남편의 살뜰한 사랑보다 더한 것, 자기 존재의 자유를 갈망했던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살고 싶은 것, 그 평범한 욕망이 허용되지 않았던 19세기 가부장제 하에서 그녀는 자신이 주체인 삶을 꿈꾼 것이다.

 

그녀는 다시 울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죽은 상태에서 포개어진 그 친절하고 부드러웠던 두 손과, 그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는 결코 그녀를 들여다보지 않았던, 단단하게 굳어진 회색으로 변한 그의 얼굴을 보게 될 때.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비통한 시간을 넘어, 전적으로 그녀에게 속하게 될, 앞으로 다가올 긴 시간의 행렬을 보았다. 그녀는 팔을 벌려 그것들을 향해 펼치며 환영했다. 그 다가오는 세월 동안 그녀가 (그 누군가를) 위해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동료 인간에게 사적인 의지를 행사를 권리가 있다고 믿는 그 맹목적인 고집 속에서 그녀의 의지를 꺾는 어떠한 강력한 의지도 없을 것이다

 

She knew that she would weep again when she saw the kind, tender hands folded in death; the face that had never looked save with love upon her, fixed and gray and dead. But she saw beyond that bitter moment a long procession of years to come that would belong to her absolutely. And she opened and spread her arms out to them in welcome. There would be no one to live for during those coming years; she would live for herself. There would be no powerful will bending hers in that blind persistence with which men and women believe they have a right to impose a private will upon a fellow-creature

 

자 이래도 그녀를 못된 여자라고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결혼과 모성을 통해서만 진정한 여성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가르쳤던 19세기 가부장제하에서 여성도 한 인간으로서 고유한 욕망이 있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항변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은가? 위 인용에서 남편은 그녀를 사랑했을지는 몰라도 번번이 그녀의 의지를 가부장의 권위로 눌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적 풍요와 남편의 사랑만 있으면 여성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지나친 오해다.

 

어쨌든, 21세기 남자가 보아도 다 이해되기는 어려운 이 맹랑한감정을 느끼는 여성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겨우 세 쪽짜리 단편소설로 절묘하게 포착해낸 작가는 1850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크리올계 가정에서 태어나 1905년에 생을 마감한 케이트 쇼팬이다. 결혼 후 남편의 고향인 루이지애나로 이사가 플랜테이션 농장과 크리올계 문화적 배경에서 생활했던 경험은 훗날 그녀의 작품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 케이트 쇼팬과 자녀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런데 40이 되도록 여섯 아이를 낳고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던 그녀를 그토록 단기간에 시대를 앞서가는 논쟁적인 작가로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남편과 모친의 연이은 죽음 뒤에 찾아온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의사의 권유로 시작한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자아 욕구와 가부장제하에서 억압된 여성의 욕망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졌다. 남편의 사랑으로도, 모성의 위대함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 욕구와 억압된 여성 욕망에 대한 일관된 탐색은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출간된 각성(The Awakening)이라는 장편소설에서 절정에 달했다. 쇼팬의 대부분의 단편소설에는 어쨌든 결혼제도 안에서 자아 탐색을 시도했던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각성의 여주인공은 독립적인 자아 추구의 욕망 속에서 아내의 역할뿐만 아니라 끝내는 모성도 저버림으로써 당대 독자와 비평가들의 도덕적 한계에 도전한다. 쇼팬은 이를 계기로 더 이상 작품을 출간하지 못함으로써 단편소설을 통해 쌓았던 독특한 지방색 작가로서의 명성과 커리어를 모두 잃고 수십 년간 영문학사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다.

 

1960년대 말 여성주의 비평가들에 의해 재발견된 쇼팬은 시대를 훨씬 앞서간 그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The Story of an Hour”는 한마디로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고 슬픔과 함께 육체와 영혼의 해방감을 느끼지만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그의 모습을 보고 심장마비를 일으키기까지 여주인공이 한 시간 동안 경험하는 감정의 변화들을 다루었다. 마지막 문장은 결정적 반전과 아이러니를 담고 있으니 천천히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구글에 영어 제목을 치면 원작도, 번역도 쉽게 다운받을 수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