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빈, 어느 연출가의 노트6]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공연예술인의 자세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0/08/28 [16:28]

[임선빈, 어느 연출가의 노트6]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공연예술인의 자세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0/08/28 [16:28]

 

코로나 19에 대처하는 공연예술인의 자세

 

▲ 임선빈 연극연출가 / 극작가 ©photo by 리버 에이치 

 

 

앞서 내가 전체 공연예술인을 대표하는가? 라는 질문은 일단 접어 두기로 하자. 왜냐면 연극을 만들고 희곡을 쓰는 내가 공연예술계를 대표하는가 라는 소모적 질문은 뒤로하고 우선 양해하면서 나의 의견을 펼치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모두의 문제인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간은 변화의 척도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은 오직 과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현재의 기억뿐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인간의 정신 안에 있다.” 둘 다 다소 교조적으로 들리나 이 두 양반들이 몇 천 년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영향력으로 치자면 내가 백날 떠드는 것보다 이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난데없는 코로나 19 사태에 내가 느낀 것은 공교롭게도 시간의 문제였다. 지난 메르스(M.E.R.S) 사태(2015년 한국의 치사률은 21%였으며 한국인의 공식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세계 2위를 차지했다.)는 초기 대응력 실패. 사실의 은폐 허술한 검역망 등으로 전염병 확산에 실패했다.

 

당시 공연 예술계는 거의 무정부 사태에 가까운 상황을 경험했고,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순식간에 일종의 시장성 자체가 무너져버렸다. 다시 한 번 저명한 분의 말을 인용해 보자. 뉴턴은 시간은 변화와 상관없이 흐른다. 아무 변화가 없어도 시간은 흐른다. 수학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시간에 대한 개념과 체득 및 경험한다고 믿고 있는 시간은 이 뉴턴의 시간 개념과 흡사하다. 뉴턴의 개념으로 치자면 우리는 전쟁에 버금가는 무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좀비를 만들어 내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진심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무서운 변화를 겪고 있음으로 몇 개월의 순차적 시간은 은유로써도 몇 년의 시간이 흘러버린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피로하고 괴롭고 두렵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개념에 따르자면 매일 우리는 오늘을 뒤로하고 내일로 진군하고 있으니 모두 과거사다. 그리고 이 피로하고 괴롭고 두려운 것 또한 또 다시 과거로 지나가면서 우리들의 정신 안에 깃든 두려움을 떨쳐내고 앞으로 나아가면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과연 그러한가?

 

공연예술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사회 공공재의 성격을 획득하지 못했다. 심지어 예술가는 직업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다. 예술가를 놓차니 조금 서운하고, 들고 있자니 무거운 짐짝 취급했다. 이를 일개 아무개에 지나지 않는 내가 새삼 왈가왈부해봐야 체면만 깎일 판이다.

 

메르스 사태는 당시 정부가 조금 크다 싶게 직접 피해를 입은 예술인과 예술단체에 돈을 풀어주면서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크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가 증명했다. 당시에 피해보상은 역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 및 단체는 철저히 배제하였음으로 화이트 리스트에 해당하는 쪽에서 싹쓸이 해갔다. 나는 그런 보상금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우리가 더 과거의 시간을 떠올려 보면 사스 사태 때에도 우리 직업군은 검역당국에 의해서도 보호 받지 못했고, 시민사회에게도 위로 받지 못했다.

 

현재 코로나 19 사태에 의해 길게는 3년 이상 짧게는 1년 전부터 준비 해 온 프로젝트들은 모두 잠정 중단 혹은 무기한 연장 상태이며 8월 말 현재 매일 대학로로 출퇴근하는 약 3천 여 명의 연극인들의 수는 조금 과장하자면 1/10로 줄었으며 당연히 관객도 없어졌다.

 

이번 정부도 이번 사태에 따른 피해를 구제해주기 위한 방법을 찾아 특별교부금 형식으로 지원금 제도를 만들어 공모했다. 현재 얼마나 피해를 많이 받았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서류를 쓰다가 혈압 올라 죽을 지경이다.

 

지원금을 통해 피해자를 구제해 준다는 창구도 통일되어 있지 않고 중구난방이며, 이 또한 심의 위원들이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하고 심의하여(앞선 메르스 사태 때의 보상제도와 달라야 한다는 도덕적 딜레마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차등 지원하거나 아예 자격 없음으로 탈락 시킨다.

 

결론은 특별교부금보다 재난지원금이 더 실효가 있었다. 나의 경우 재난지원금으로 배우들을 위한 분장도구를 구입했으니 정부와 서울시에 성은이 망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시민 사회에게는 매우 서운하다.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 자립 갱생의 의지는 하늘을 찌르지만 갱생을 인도해 줄 성숙한 시민 사회가 아직 도래하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언제쯤 나는 예술가입니다.” 라는 말이 나는 예술가가 직업이고 생계 수단입니다.”와 동일한 말이 될지 다 시 한번 저명하신 마흐 선생의 말을 인용하겠다. “우리는 시간을 통해서 사물의 변화를 측정할 수 없다. 시간은 오히려 사물의 변화를 통해 얻어내는 추상성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이 변화가 어디로 어떻게 추상화될지 매일 공연장 문을 하나씩 셧다운 해 가면서 연습실 문을 닫으면서 언제라고 우리에게 좋은 시절이 있었던가?”라고 자문한다.

 

예술이 지금 당장은 쓸모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모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구름타고 피리 부는 놀이처럼 중차대해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22세기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무형의 유산을 생산하고 있는 노동자다. 우리에게도 성숙한 시민의식과 분별 있는 행정정부가 간절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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