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교수의 영미단편소설 읽기2] 우정과 20년 시간의 무게, 오 헨리의 “20년 후”

오 헨리의 “20년 후” (After twenty years)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0/08/31 [16:08]

[김선옥 교수의 영미단편소설 읽기2] 우정과 20년 시간의 무게, 오 헨리의 “20년 후”

오 헨리의 “20년 후” (After twenty years)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0/08/31 [16:08]

 

우정과 20년 시간의 무게 - 오 헨리의 “20년 후” (After twenty years)

 

▲ 오 헨리(O. Henry 1862-1910)  (사진출처=위키피디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20년 시간이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20년 시간이 사람에게 일으킬 수 있는 극적인 변화와 그럼에도 지속될 수 있는 우정을 다룬 짧은 단편소설이 있다. 우리나라 독자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가 썼고, 고등학교 영어 교실에서도 종종 다뤄지는 작품이라 많은 이들이 읽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에 관심 없는 이도, 문학을 싫어하는 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오 헨리(O. Henry 1862-1910)1906년에 쓴 단편소설 “20년 후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고교 졸업 후 두 소년이 각자의 길을 가면서 마지막으로 저녁을 함께 먹은 식당에서 20년 뒤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다룬다.

 

▲ 오 헨리와 그의 가족.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였던 그는 은행 근무 시절의 계산 착오로 횡령죄로 고발당한 뒤 온두라스로 도망쳤다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아내의 곁을 지키기 위해 귀국해 5년형을 선고받지만 3년 복역 후 모범수로 풀려난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때는 20세기 초, 10시가 가까워지는 늦은 밤, 뉴욕의 스산한 골목길에서 한 경관이 능숙하게 곤봉을 돌리며 야간 순찰을 돌고 있다. 같은 시각 어두운 골목길 철물점 앞에는 눈 가에 상처 자국이 있는 중년 사내가 시가를 물고 긴장한 듯 서 있다. 남자의 이름은 밥(Bob), 그는 20년 전 바로 그 자리에 있던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저녁을 함께 먹고 자신이 서부로 떠나면서 소식이 끊긴 옛 친구 지미(Jimmy)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약속했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20년 뒤 그곳에서 꼭 다시 만나자고! 밥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마일(1610 km)을 달려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난 이 작품을 여러 번 읽었는데도 이 장면이 마음속에 떠오르면 언제나 긴장되고 흥분된다. 어린 시절 단짝 친구와, 아니면 사춘기 시절 마음을 설레게 했던 누군가와 진지하게 했을지도 모르는 약속, “이 다음에 어른 돼서도 우리 우정 변치 말자!” “어른 돼서도 우리 마음 변치 않으면 그때 꼭 다시 만나자!” 뭐 이런 약속을 나도 누군가와 했었던 것 같다. 시간과 장소를 확정하지 않은 게 문제였지만.

 

밥의 친구 지미는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자기처럼 똑똑하거나 야망 있는 녀석은 아니었어도 우직하고 충실하며 믿을만한 최고의 친구(my best chum)였다는데 그도 과연 약속을 지켜 나타날까? 둘이 식사를 마치고 떠나기 전 약속한 시간 10시가 다가오는데 지미는 나타나지 않고 그 대신 야간 순찰을 도는 경관이 다가오자 밥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거기 서 있는 이유를 변명처럼 주절주절 설명한다. 곧 일어날 20년만의 만남에 흥분해서였을까 아니면 경찰관 앞에서 본능적으로 자기 방어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얘기는 흥미롭지만 과연 20년 전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경찰관이 그동안 소식은 주고받았는지 묻자 밥은 진지하게 말한다.

 

지미가 살아 있다면 여기로 나를 만나러 올 겁니다. 그는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진실하고 가장 믿음직한 친구였으니까요. 그는 결코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을 거에요. 저는 오늘 밤 이 문에 서 있기 위해 천 마일이나 달려왔어요. 나의 옛 친구가 나타난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거죠.”

 

“I know Jimmy will meet me here if he's alive, for he always was the truest, stanchest old chap in the world. He'll never forget. I came a thousand miles to stand in this door to-night, and it's worth it if my old partner turns up."

 

당신에게는 이런 친구가 있는지?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어떤 인생을 살았더라도, 어찌어찌해서 소식이 끊겼더라도, 살아있는 한은 20년 전 약속을 지키리라 확신할 수 있는 정직하고 의리 있는친구가 있는지,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 행운아다.

 

그런데 위인용에서 묘사된, 옛 친구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의리를 보여주는 밥의 순수한 태도와 달리 서부 생활은 어땠냐고 묻는 경찰관에게 그간의 성공을 떠벌리는 그의 진술이 어째 좀 불길하다.

 

당신은 서부에서 사업이 아주 잘 되었나 보군요.”

물론이지요. 지미가 제 절반만이라도 잘 했으면 좋겠어요. 그 친구, 우직하고 좋은 녀석이긴 한데 약삭빠르지는 못했어요. 저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 최고로 똑똑한 몇몇 사람들과 경쟁해야 했지요. 뉴욕에서는 사람이 판에 박은 듯 되기 쉬워요. 사람이 똑똑해지기 위해선 역시 서부로 가야 합니다.”

 

“Did pretty well out West, didn't you?" asked the policeman.

"You bet! I hope Jimmy has done half as well. He was a kind of plodder, though, good fellow as he was. I've had to compete with some of the sharpest wits going to get my pile. A man gets in a groove in New York. It takes the West to put a razor-edge on him."

 

화자가 묘사하는 그의 외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공한 남자답게 넥타이핀과 시계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서부에서 엄청 돈을 벌었나보다! 이쯤에서 그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돈 많이 벌어 성공한 것이야 나쁠 것 없지만 자신의 성공을 떠벌리고 싶어 고가 장식물로 치장하고 으스대는 중년 남자, 호감 가는 인물은 아니다.

 

10시가 한참 지나 거의 터무니없다 싶을 만큼 불확실한”(uncertain almost to absurdity)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천 마일을 달려온 밥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지미가 어둠 속에서 나타난다. 키는 전보다 훨씬 커 보이지만 벅찬 기쁨에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감격스럽게 안부를 나누는 두 사람, 그 와중에도 밥은 서부에서의 성공을 자랑한다. 그런데 코트 깃을 세우고 흥미롭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예전보다 키가 2, 3 인치는 더 커 보이는 그 남자가 과연 지미였을까? 약국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팔짱을 끼고 걷던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자 밥은 그가 지미가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챈다.

 

당신은 지미 웰스가 아니야” “20년은 긴 시간이지만 사람 코를 매부리코에서 들창코로 바꿔놓지는 않아지미를 사칭하던 남자는 정곡을 찌르는 말로 받아친다. “하지만 그 세월이 때로는 착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바꾸기도 하지. 당신은 이미 10분 전부터 체포된 몸이야 실키 밥. 시카고 경찰에서 당신이 우리 쪽으로 올지 모른다고 연락을 해 왔어. 얌전히 가실까?”

 

그랬다, 밥은 시카고 경찰이 수배중인 범죄자였다. 다이아몬드로 치장된 그의 외모가 처음부터 뭔가 불길했다. 그렇다면 경찰은 어떻게 알고 지미를 위장하며 나타난 걸까. 서프라이즈 엔딩, 반전의 대가, 오 헨리를 읽는 독자의 즐거움을 망치지 않기 위해 중요한 것들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짧은 작품이니 영어 공부삼아 구글에서 내려 받아 직접 읽어보시길!

 

다만 난 여기서 작년에 내 학생들에게 했던 질문 하나를 하고 싶다. 20년 만에 만난 어릴 적 단짝 친구가, 혹은 첫사랑이 수배중인 범죄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가 당신을 만나러,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년 세월이 지나 천 킬로도 넘는 곳에서 당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학생은 친구한테 수배중이니까 도망치라고 귀띔할 거 같다고 했다. 친밀했던 어릴 적 관계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어떤 학생은 일단 경찰에 신고하고 나중에 면회하러 가겠다고 했다. 아직은 순수한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청년들의 답변이니 중년 세대는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

 

문학 작품의 매력은 한 인간을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 20년 세월은 성공을 꿈꾸며 호기 있게 서부로 떠난 젊은 청년을 범죄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마음속에 간직한 옛 친구에 대한 믿음과 우정, 그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똑똑하지는 않았어도 우직하고 정직하고 믿음직했다는 지미는 그의 믿음대로 20년 세월동안 변하지 않았을까? 20년 시간의 무게, 그것은 과연 그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진짜 지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니 작품을 읽으며 그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범죄자로 나타난 옛 친구를 어떻게 대했는지 작품 읽으며 직접 확인해보시길!

 

칼럼니스트: 원광대학교 영어교육과 조교수 김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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