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이야기
우리 본가는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차남인 아버지는 큰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귀향하여 차례를 지냈지만 백부님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가지 않으신다. 물론 우리 본가에서도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 명절이 여느 집안만큼 들썩이진 않지만 솔직히 몸과 마음이 편하다. 근본 없는 집안 같아 보이긴 해서 뭐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다고 근본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쿨하게 인정하는 바이다.
내가 어릴 때에 큰아버지 댁에는 사촌형님이 그 또래 친구들과 우리 아버지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며 뒷담화하고 놀림감 삼아 비아냥대던 것을 본적이 있다. 그때가 아마 내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 일거다.
그리고 이제부터 말하는 내용은 우리 집안에서 아무도 내게 말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마흔이 넘었을 무렵부터 추론해 낸 가설이기도 하다.
그 사촌형은 우리 아버지와 불과 서너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빠를 업신여기고 막 대했던 거 같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 같다. 큰아버지의 아들 나이 또래인 우리 아버지는 아마도 소위 말하는 첩의 자식이었나 보다. 우리 할아버지 그래도 살만 하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두 번째 부인(첩)에게서 자신의 손자뻘 되는 늦둥이를 낳았던 건가 보다.
다시 말하지만 이 가설은 친척 또는 나의 피붙이가 해준 말은 1도 없이 나의 두뇌가 추론한 가설이란 것이다. 게다가 얼핏 듣기엔 우리 집안엔 사실 논도 많았었는데 친할아버지는 그걸 다 털어먹으셨다는 것 같았다. 그런 친할아버지는 내가 네 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진 속 얼굴 외엔 기억이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난 중학교 오르기 전까지 매해 방학마다 큰집에서 보냈으며 그 동네에서 가장 따르던 “현우”라는 형이 있었다. 우연찮게도 현우형 역시 나이 차이가 엄청 많은 형이 있었고 그 형은 또 그때 우리 사촌형의 동네 친구였다. 당연히 우리 아빠를 뒤에서 같이 놀려대던 이이기도 했다. 현우 형은 자신의 형을 무서워하고 싫어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현우형도 둘째 부인의 자식이었던 것 같았다.
그 당시 우리 아버지 고향에는 첩질(?)이 집집마다 유행이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향도 없어지고 사촌형이랑도 거의 절연 상태라 사실은 몸과 마음은 편하다. 그리고 우리 아내에게도 이런 상황은 꽤나 큰 행운일 것이라고 난 혼자 생각한다. 괜히 입 밖에 내었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이라는 걸 알 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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