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1] 뉴욕 여행과 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8/12/25 [22:14]

[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1] 뉴욕 여행과 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8/12/25 [22:14]


뉴욕 여행과 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

 

▲ 김선옥 원광대 교수    

 

에밀리 디킨슨의 고향 애머스트를 떠나 스프링필드에서 갈아탄 그레이하운드 버스는 4시간을 거침없이 달려와 뉴욕에 도착했건만 맨해튼 입구부터 꽉 막힌 교통체증이 심상치 않았다. 오후 430분쯤 도착 예정이었던 버스는 결국 엉금엉금 기어가다 미드타운에 있는 Port Authority 버스터미널에 저녁 6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버스터미널 이름이 이상하다 싶어 검색해보니 뉴욕 항만청에서 운영하는 맨해튼 최대의 공영 터미널이란다. 우리말로는 항만 당국 버스터미널쯤 되려나. 미국 내 여러 주를 오가는 버스들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 오는 버스들도 이곳에 집결한다고 하니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버스터미널은 지하철과도 연결되어 있었지만 바깥 공기가 간절해서 서둘러 출구로 나오니 맨해튼 8번가 41로였다. 센트럴 파크를 가운데 두고 허드슨 강을 따라 길게 뻗은 형태로 누워있는 뉴욕의 중심 맨해튼은 남북을 연결하는 큰 도로를 Avenue,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들을 Street로 표시하고 앞에 번호를 붙여놔서 길 찾기가 쉬웠다. 예약해둔 숙소는 8번가 23로에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초고층 빌딩과 다인종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리는 활기차고 분주했지만 대부분의 고층건물들이 수십 년이 넘은 것들이라 사진에서 보던 뉴욕 모습과 달리 우중중한 분위기를 띠었다. 특히 고층건물 아래 도로변에서 잡동사니를 깔고 앉아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달러를 구걸하는 홈리스들 모습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음울하고 낯선 풍경이어서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 뉴욕 8번가 미드타운 쪽 거리 모습. 대부분 오래된 건물들이어서 칙칙한 색을 띠고 있다.    

 

뉴욕에서 맞이한 첫 아침, 맨해튼을 동서로 가르는 유명한 5번가 대로를 따라 그랜드센트럴 역까지 걸어가며 몇 군데 명소들을 구경한 다음 기차를 타고 맨해튼 북쪽 테리타운(Tarrytown)에 있는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5번가 거리는 소문대로 초고층 빌딩과 럭셔리한 브랜드숍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지만 모두 패스하고 34번로에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층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만족했다. 너무나 유명한 건물이어서 그랬는지 처음 이 빌딩 앞에 섰을 때는 벅찬 마음으로 한참을 올려다봤지만 커피숍에 앉아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에 함께 있으니 뭐 그다지 특별한 곳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스타벅스를 나와 42번로까지 걸어가 영화에도 종종 등장하는 뉴욕의 또 다른 명소 브라이언트 공원(Bryant Part)과 뉴욕 공공 도서관을 둘러본 뒤 조금 더 걸어 근처에 있는 세계 최대의 기차역, 그랜드센트럴 역에 도착했다. 100년 역사를 이어온 뉴욕 명소로서 영화와 소설에서 로맨틱한 만남의 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그랜드센트럴 역은 그 명성에 걸맞게 대리석 건물 외양뿐만 아니라 12궁 별자리를 촘촘히 박아놓은 중앙 홀 천장이 압도적이었다. 지하철이 닿지 않는 뉴욕 외곽을 연결하는 열차들 대부분이 이 역에서 출발하기에 워싱턴 어빙의 집이 있는 맨해튼 북쪽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허드슨 방향의 Metro-North 기차를 타야 한다.

 

▲ 그랜드센트럴 역 중앙 홀 내부 모습. 관광명소로도 유명해서 늘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사진출처=구글)    

 

워싱턴 어빙은 모히칸족의 최후를 쓴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와 함께 미국 본격 문학을 시작한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다. 1819년에 출간된 그의 단편소설 립 밴 윙클’(Rip Van Winkle)은 카츠킬 산(Catskill Mountains) 아래 네덜란드 개척민들이 세운 초기 식민지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다. 국내 어린이용 도서 목록에도 올라와 있을 만큼 쉽고 재밌는 이야기여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지만 유럽문명과 영국 본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미국인의 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문학사상 중요한 작품으로 다뤄진다.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카츠킬산 마을에 사는 립 밴 윙클은 성품은 착하지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어떤 일도 싫어하는데다 게으르고 무책임해서 늘 아내의 무서운 잔소리에 시달리는 공처가이다. 어느 날 그는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개를 데리고 카츠킬 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네덜란드 선원 복장을 한 노인이 술통을 지고 가는 것을 도와주게 된다. 그를 따라 산속 공터에 들어서니 노인과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볼링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어서 립 밴 윙클도 몰래 술을 마시다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20년 세월이 흘러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무서운 부인도 죽어서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젊은 세대에 들려주며 남은 생을 행복하게 보내게 된다.

 

▲ 립 밴 윙클 동상. 워싱턴 어빙의 집으로 가는 길 입구에 있다.    

 

신비한 술이나 음료를 마시고 깜빡 잠들어 일어나보니 엄청난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문화에서건 민담이나 전설로 흔히 전해오는 이야기이다. 어빙은 이 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일 민간설화를 단편소설로 발전시켜 미국 독립이라는 꿈과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대자연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 미국 남성의 꿈을 담았다. 그런데 본국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던 초기 개척민들의 꿈을 선량하지만 게으른 공처가가 악독한 부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상황과 병치시키는 대목은 현대 여성 독자들을 좀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빙이 이 작품을 1819년에 썼다는 점을 감안하시고 그를 여성혐오자로 너무 몰아세우지는 마시길!

 

▲ 워싱턴 어빙.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와 함께 최초로 미국적인 주제를 작품에 담았다고 평가된다.     (사진출처=구글)    

 

그랜드센트럴 역을 출발해서 약 50분가량 허드슨 강을 따라 달리던 기차는 어빙의 이름을 딴 어빙턴 마을에 나를 내려주었다. 어빙의 집은 역에서 20분가량 떨어진 허드슨 강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마을 입구에는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립 밴 윙클의 동상이 앉아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 개척민이 처음 세우고 1835년 어빙이 사들여 개조한 뒤 ‘Sunnyside’라고 명명한 그의 집은 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역사 유적지여서 주차장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꽤 보였다. 17세기 식민지 시절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가이드를 따라 그의 집을 둘러보는 것은 독특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어빙은 76세에 심장마비로 죽는 날까지 약 25년가량 이 집에서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 워싱턴 어빙의 집 ‘Sunnyside’ 1962년 국립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사진출저=구글)    

 

어빙의 집 마당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허드슨 강을 질리도록 바라보다 어두워지기 전 그의 집을 나와 기차를 타고 그랜드센트럴 역으로 돌아왔다. 기차 밖으로 나오니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역에서 가까운 7번가 42번로 타임스퀘어 광고판에도 요란하게 불이 켜질 것이다. 치일 듯 넘쳐나는 관광객 무리에 섞여 내 발걸음도 그리로 향했다. 해진 후 뉴욕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은 과장된 경고인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스름이 깔리는 주요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어서 위험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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