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5] 뉴욕여행 5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4/02 [14:01]

[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5] 뉴욕여행 5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4/02 [14:01]

 

뉴욕여행 5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 김선옥 원광대 교수    

 

뉴욕 여행의 마지막 날, 이른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센트럴 파크에서 할렘까지 종일 걸었던 전날의 피로는 신기하리만큼 말끔히 가셨다. 10시도 안되어 곯아떨어진 탓도 있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쉬움과 조급함 때문이었으리라. 이제 뉴욕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싶은 곳이 두 군데 남아 있었다.

 

사진으로 수도 없이 봤지만 꼭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과 스콧 피츠제럴드의(Scott Fitzgerald)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의 배경이 되는 롱아일랜드의 그레이트 넥(Great Neck)이었다. 둘 다 먼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페리와 기차를 타고 도심지를 벗어나는 일정이다 보니 숙소를 나서면서 살짝 긴장감이 밀려왔다.

 

로우 맨해튼 행 지하철을 타고 볼링 그린(Bowling Green) 역에서 내려 배터리 공원(Battery Park) 안으로 들어서니 이른 아침인데도 꽤 많은 여행객들이 줄지어 있었다. 다행히도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을 운행하는 페리는 20분에 한 번씩 있는 데다 섬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배가 섬에 닿는 순간 총 93.5미터나 되는, 하늘 높이 횃불을 치켜들고 서 있는 여신상의 규모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압도적이어서 놀라웠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 국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10여 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제작된 뒤 1886년에 배로 어렵게 이곳에 운반되었다 하니 역사적 의미도 남달랐다. 두 나라의 국민이 피를 흘리며 지키고자 했던 자유의 상징으로서 뉴욕 항 입구에 위풍당당하게 세워진 이 여신상은 이후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모진 고난과 풍파를 헤치며 뉴욕 항구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에게 미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희망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 배터리 공원 선착장으로부터 리버티 섬을 오가는 페리와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이민자들이 가슴에 품었을 아메리칸 드림1620년 새로운 에덴을 건설하겠다는 꿈을 안고 모진 고난을 헤치며 신세계로 이주한 초기 청교도들의 꿈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신화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경제가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1920년대의 호황기에 극에 달했다.

 

1896년 중서부 미네소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을 중퇴하고 1차 대전 시기 군 복무 중에 만난 상류층 여성 젤다(Zelda)와 결혼한 뒤 사치와 방탕을 즐기며 작가 활동을 한 피츠제랄드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영광과 실패를 극적으로 보여준다.1925년 출간 당시 평자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로부터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그의 사후에 재평가되어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고전이 되었다.

 

▲ 피츠제럴드와 그의 부인 젤다. 두 사람은 화려한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피츠제럴드는 빚더미 속에서 45세에 심장마비로, 젤다는 8년 뒤 입원 중이었던 정신병원에서 화재로 사망했다. (사진출저=위키피디아)    

 

작품 속에서 이스트 에그(East Egg)와 웨스트 에그(West Egg)로 명명되는 곳은 롱아일랜드의 맨해셋 만(Manhasset Bay)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비슷한 모양으로 튀어나온 샌즈 포인트(Sands Point)와 킹스 포인트(Kings Point) 지역을 가리킨다. 개츠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는 음울한 잿더미 계곡(Valley of Ashes) 역시 지금은 퀸즈(Queens) 지역을 대표하는 플러싱 메도우즈 코로나 공원(Flushing Meadows-Corona Park)으로 바뀌었지만 20년대에는 맨해튼을 포함하여 인근 도시에서 발생하는 석탄재를 쌓아두던 대표적인 쓰레기 처리장이었다.

 

▲ 『위대한 개츠비』의 사건이 일어나는 주요 장소들을 보여주는 지도. 가운데 잿더미 계곡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진출처=구글)     ©

 

피츠제럴드 부부는 뉴욕 맨해튼에서 살다 딸 출생 후 약 2년간 롱아일랜드의 그레이트 넥에 있는 맨션에 살며 북쪽 해안가의 부자들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자주 참석했는데, 이 경험이 위대한 개츠비의 모태가 되었다 한다. 2013년에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위대한 개츠비는 가난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젊은 시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삶의 전부를 거는 신흥 부자 개츠비의 이야기를 다룬다.

 

20년대의 경제적 호황을 배경으로 밀주와 도박과 금융 사기로 거부가 된 개츠비는 작은 만을 사이에 두고 연인이었던 데이지(Daisy)가 사는 집 맞은편에 궁전 같은 저택을 사서 주말마다 흥청망청 요란한 파티를 연다. 단지 언젠가 데이지도 그 파티에 참석하게 되리라는 희망 때문에! 개츠비에겐 그 모든 물질적 성공이 오직 한 사람, 오직 하나의 순수했던 과거의 사랑을 되찾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영화든 책이든 이 작품은 꼭 만나보시길! 그리고 왜 개츠비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는지, 그리고 그 수식어에 동의하는지 판단해 보시라. 책을 읽고 영화까지 보신다면 뉴욕을 여행할 때 분명 나처럼 그 흔적을 찾아 롱아일랜드를 방문하고 싶어질 것이다.

 

▲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노르망디 궁전 스타일의 개츠비의 저택. 시드니에서 촬영된 기본 건물 위에 컴퓨터 그래픽을 입혔다 한다. (사진출처=영화 '위대한 개츠비' 캡처)     ©

 

7대륙을 상징하는 뿔 달린 왕관을 쓰고 미국의 꿈을 만방에 전하는 자유의 여신상 속으로 들어가 왕관 속에 있는 전망대에서 뉴욕을 조망하다 페리를 타고 월가 쪽으로 다시 나왔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이자 그의 이웃으로 등장하는 닉 캐러웨이(Nick Carraway)은 바로 이 월가에서 일하며 펜 역(Penn Station)에서 기차를 타고 웨스트 윙까지 통근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가 취했을 법한 경로를 따라 월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펜 역으로 가서 포트 워싱턴(Port Washington)행 표를 끊었다. 기차는 30분마다 출발했고 웨스트 윙의 실제 지명인 그레이트 넥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렸다.

 

그레이트 넥은 한눈에 봐도 맨해튼과 확연이 다른 교외지역이었다. 높은 빌딩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단층건물에 자리 잡은 식당과 카페와 베이커리들이 주도로를 따라 평화롭게 줄지어 있었다. 다행히도 피츠제럴드가 1922년부터 2년간 거주하면서 위대한 개츠비를 구상했다는 집은 중심부의 미들 넥(Middle Neck) 도로에서 왼쪽 주택가로 조금 들어가는 게이트웨이 드라이브(Gateway Drive) 6번지에 있었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집은 대저택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1920년대에 피츠제럴드가 그곳에 살았으리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맨션이었다.

 

▲ 피츠제럴드가 1922년부터 2년간 거주했다는 게이트웨이 드라이브 6번지 주택    

 

산책삼아 동네 주택가를 한가하게 거닐다가 개츠비의 대저택이 위치한 곳으로 묘사된 북쪽 해안까지 걷고자 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도로변에 상가들이 없어지고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고급 맨션들만 나타나서 혼자 걷는 게 두려워졌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워 택시를 타고 북쪽 끝까지 가서 개츠비 레인’(Gatsby Ln)에서 잠시 내려 해안가를 내려다본 뒤 역으로 돌아와 맨해튼 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박했고 퀸즈 지역의 Mets-Willets Point역을 지날 때에는 잿더미 계곡이 생각나 재빨리 창밖을 내다보았다. 구글로 검색한 바로는 바로 그 지역 일대가 1920년대의 석탄재 처리장이었기 때문이다. 큰 스포츠 경기장을 갖춘 녹색 공원을 보며 누가 그곳이 한 때 잿더미 계곡이었으리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책과 영화에서 묘사된 음산한 풍경과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어서 갑자기 내가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예정보다 일찍 펜 역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개츠비와 톰이 데이지의 사랑을 놓고 언쟁을 벌이던 센트럴 파크 옆의 플라자 호텔(The Plaza)을 방문했을 때는 이 시간여행의 느낌이 사라졌다. 책에 묘사된 그 이름 그대로 플라자 호텔은 센트럴파크의 남쪽 연못을 내려다보며 일반 객실마저도 하룻밤에 100만원이 훨씬 넘는 럭셔리 호텔로서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자 호텔은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은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어서 로비만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46번가 있는 쿠바 레스토랑 하바나(Havana)로 향했다. 셔츠 차림으로도 편안한 쿠바 분위기 속에서 웨이터가 추천해준 나름 럭셔리한 치킨 요리와 허브가 듬뿍 들어있는 모히토 한 잔을 저녁으로 즐기며 아쉽지만 뉴욕 여행을 마무리했다. / 김선옥 원광대 교수

 

▲ 밥이 함께 섞여 있는 쿠바 치킨요리. 오른쪽은 블랙 빈 수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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