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6] 필라델피아 여행과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5/06 [22:49]

[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6] 필라델피아 여행과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5/06 [22:49]

 

필라델피아 여행과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 김선옥 원광대 교수


필라델피아를 향해 뉴욕을 떠날 시간이었다. 메가버스(Megabus) 웹사이트에서 휴대폰으로 간단하게 예약해둔 첫차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에 숙소를 나왔다. 메가버스 정류장은 독립된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11번가 34번로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8번가에 있던 숙소에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11번가로 가는 길에 10번가에 있는 유명한 하이라인(The High Line) 공원길을 걸어보았다. 이곳은 노후화로 사용이 중단된 뒤 공중에 흉물로 방치되었던 고가 철도가 멋진 공원이 되어 맨해튼의 명물로 탈바꿈한 것이란다. 고층건물 사이로 공중에 떠 있는 보행길 양쪽에 갖가지 꽃들과 나무들이 아기자기 심어져 있어 지상의 공원과 다른 동화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이른 아침 이색적인 공원길을 걸으며 뉴욕을 떠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 맨해튼의 명소 중 하나인 약 10m 높이로 공중에 떠 있는 1.8km 길이의 하이라인 공원    

 

하이라인 공원길 끝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11번가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메가버스를 타려고 줄지어선 여행객들이 보였다. 메가버스는 넓고 편한 의자에 화장실까지 갖춘 2층 버스인데 요금도 저렴한 편이어서 여행자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듯 했다. 큰 배낭을 짊어진 젊은 여행자들 무리에 섞여 버스에 올라 음악을 듣다 잠깐 잠들었는가 싶었는데 벌써 필라델피아에 도착해 있었다. 뉴욕에서 필라델피아까지 2시간, 미국 기준으로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필라델피아는 1681년 퀘이커 교도였던 윌리엄 펜(William Penn)이 차알스 2세로부터 채무 변제로 하사받은 땅에 동료들과 함께 들어와 인디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확립한 도시였다. ‘형제애라는 지명에 걸맞게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고수할 수 있었기에 일찍부터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다. 1776년에 식민지 본국이었던 영국을 상대로 독립선언서가 선포되고, 이후 1800년까지 미국의 수도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던 역사적 도시 필라델피아. 메가버스는 그 역사적 현장을 간직한 올드 시티’(Old City) 한 가운데에 한 무리의 여행자들을 내려놓고 신시가지 종점을 향해 떠났다.

 

▲ 필라델피아의 구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국립 역사 공원. 정면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미국 독립기념관이다. 독립혁명 당시에는 주 정부 청사 건물이었다.    

 

내가 예약해둔 숙소는 버스 정거장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새로운 도시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정거장이 있는 마켓 거리’(Market Street)를 천천히 걷다보니 갑자기 필라델피아의 유명 인사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자서전에서 17세의 나이에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날을 묘사한 장면이 떠올랐다.

 

보스톤에서 인쇄업자인 형 밑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다 그와의 다툼 끝에 1723년 뉴욕을 거쳐 힘들게 필라델피아 항구에 도착한 프랭클린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배가 고파 마켓 거리의 빵집에 들어간다. 그는 값을 몰라 3펜스어치 빵을 주문하는데, 3개의 큰 빵 덩어리를 받자 보스톤보다 훨씬 저렴한 필라델피아의 물가에 놀란다.

 

프랭클린이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던 18세기 초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물가가 보스톤이나 뉴욕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사실은 나도 숙소를 예약하면서 느꼈다. 필라델피아의 인기 여행자 숙소인 애플 호스텔’(Apple Hostels)은 깨끗한데다 모든 편의시설을 갖추고 최상의 위치에 있는데도 보스톤이나 뉴욕에 있는 비슷한 숙소의 절반 가격에 불과했다!

 

 

1706년 보스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2세에 형이 운영하는 인쇄소의 견습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프랭클린은 자수성가한 미국인의 원형으로서 한 인간이 철저한 자기관리와 근면 성실함으로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선 견습공으로 시작한 인쇄업과 신문 발행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25년간 한 해의 생활정보와 삶의 지혜를 담은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Poor Richard's Almanac)을 발행하여 부와 명성을 쌓았으며, 도서관, 학교, 병원, 소방서 같은 공공시설을 설립하는 공익사업에 앞장섰다. 또한 독자적인 연구로 피뢰침, 프랭클린 난로, 다초점 안경 등 지금도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들을 발명하여 이것들을 특허 없이 일반에 보급했으며, 전기를 비롯하여 질병, 곤충, 해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과학자로서 영국 왕립협회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정치가와 외교관으로서는 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던가! 프랭클린은 42세에 사업을 접고 주 의회에 입성하여 본격적인 정치가의 길을 걸으면서 미국 독립선언서 작성과 독립 전쟁에 앞장섰고, 전쟁 과정에서 뛰어난 외교가로서 프랑스와의 동맹관계를 이끌어내 미국독립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프랭클린이 미국 100달러 지폐에 등장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프랭클린의 집과 인쇄소가 있던 ‘프랭클린 코트’ 입구. 마켓 거리에 면한 이곳을 통해 프랭클린이 집에 드나들었음을 보여주는 표지판이 보인다. 지하에 ‘프랭클린 박물관’이 있다.    

 

그의 사후에 발행된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The Autobiography of Benjamin Franklin)은 그가 평생에 걸쳐 자신의 힘으로 해냈던 그 모든 성취들을 가능케 했던 정신적, 윤리적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부과한 13가지 미덕을 바탕으로 근면 성실함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다방면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그의 자서전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이들을 고무시키는 대표적인 자기 계발도서로 꼽힌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자기 계발로서의 가치만 지닌 것은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태어나기 위해 진통하고 있던 18세기를 배경으로 서술된 프랭클린 자서전은 삶의 성찰과 솔직함과 유머를 간결한 문체에 담은 18세기 대표 산문으로서의 역사적 문학적 가치도 지닌다. 요컨대, 프랭클린은 앞서 언급한 타이틀로도 모자라 18세기의 대표 문인으로서 미국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 프랭클린은 정규교육은 2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다방면으로 높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사진출처=구글)    

 

체크인할 시간이 아니어서 숙소에 짐을 맡겨두고 가까이에 있는 역사 유적지로 향했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미국헌법이 제정되었던 미국 독립 기념관과 독립 선포와 함께 울려 퍼졌던 자유의 종’, 무엇보다 프랭클린의 집과 인쇄소가 있었던 프랭클린 코트’(Franklin Court)가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독립 기념관과 프랭클린 박물관을 꼼꼼하게 둘러보고 헌법 기념관 뒤에 조성된 프랭클린 스퀘어’(Franklin Square)에서 시원한 분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 뒤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공동묘지까지 걸어갔다. 18세기 복장을 한 가이드와 관광객들이 몰려있는 입구 쪽에 프랭클린의 이름이 새겨진 큰 석판과 사람들이 던져 놓은 동전들이 보였다. 17908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무덤이었다.

 

▲ 크라이스 처지 공동묘지에 안치된 벤자민 프랭클린의 무덤    

 

자서전에서 그가 언급한 대로 프랭클린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는 종종 실수와 오류를 범했고, 나중에 후회할 일도 저질렀으며,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부과한 13가지 미덕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위대한 미국인으로 만든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이른 저녁을 위해 가까이에 있는 이스라엘 식당 자하브(Zahav)로 향했다.

 

이스라엘 음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주문한 간단한 코스 요리에서 최고의 후무스(hummus)와 담백한 피타 빵, 그리고 샤프런이 들어간 특별한 밥을 먹어볼 수 있었다. 20프로의 팁과 맥주 값이 추가된 최종 계산서 비용에 좀 놀라기는 했지만 질러볼가치가 있는 이색적인 음식 경험이었다.

 

▲ 이스라엘 식당 ‘자하브’에서 코스의 일부로 제공된 후무스, 피타 빵, 샤프란 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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