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7] 필라델피아 여행2와 에드가 앨런 포의 ‘갈가마귀’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6/07 [12:54]

[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17] 필라델피아 여행2와 에드가 앨런 포의 ‘갈가마귀’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6/07 [12:54]

 

필라델피아 여행2와 에드가 앨런 포의 갈가마귀

 

▲ 김선옥 원광대 교수    

 

필라델피아의 애칭 필리(Philly), 사랑스러운 이름이라 느끼며 산뜻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간밤에 잠시 얘기를 나눴던 룸메이트가 델라웨어 강변 산책을 추천했다. 지도를 살펴보니 숙소가 있는 구시가지 역사 지구 오른쪽으로 뉴저지 주와 펜실베니아 주를 가르는 델라웨어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추천한대로 강변에서 아침 산책을 하고 시내로 나가 필라델피아 시청사를 구경한 다음 근처에 있는 리딩 터미널(Reading Terminal) 마켓에서 필리의 대표 음식인 치즈 스테이크를 먹고 마지막으로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죽어가는 아내와 함께 살았다는 집을 방문하면 알찬 하루가 될 듯싶었다.

 

▲ 필라델피아 구시가지 쪽에 위치한 델라웨어 강변 산책길    

 

내 숙소가 위치한 필라델피아 역사지구에서 델라웨어 강변까지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강 입구 쪽에 있는 한국전쟁 추모공원을 들르려고 좀 돌아가니 30분쯤 걸렸다. 6.25 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미군들을 추모하는 한국전 추모공원에는 치열했던 전투상황의 기록과 사진들이 희생자들의 이름과 함께 큰 대리석 판에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먼 이국땅에서 친구를 잃고 동료 품에 안겨 울고 있는 군인 사진과 도포를 입은 한국 노인들, 그리고 고아로 보이는 꼬마 사진이 저절로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 한국전쟁 추모공원(Korean War Memorial Park)에 있는 대리석 전시물    

 

마음을 추스르고 추모공원을 나와 강 쪽으로 내려오니 강변에 정박해 있는 거대한 배들 뒤로 탁 트인 델라웨어 강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침 햇빛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강변 풍경을 구경하며 윌리엄 펜 광장까지 느긋하게 거닐다가 근처에 있는 Second Street역으로 가 블루 라인 지하철을 타고 필라델피아 시청역으로 갔다.

 

역 밖으로 나오자 총 167m 높이에 700여개의 방을 갖추고 있다는, 1901년에 지어진 웅장한 시청사 건물이 소문대로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프랑스 나폴레옹 3세 양식의 건물이라는데, 철근 콘크리트를 쓰지 않고 오직 벽돌로만 그토록 거대한 건축물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건물 꼭대기 시계탑 위에는 1m 높이의 윌리엄 펜 동상이 아주 작은 인형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필라델피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필라델피아 시청사 건물. 웅장한 건물 내부에는 250개의 조각상이 곳곳에 놓여 있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배가 고파 시청 뒤편에 있는 리딩 터미널 시장에 들어가 치즈 스테이크로 유명한 집을 찾아보았다. 도대체 치즈 스테이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감이 오지 않았던 나는 제일 유명하다는 집에서 10분쯤 줄 서 기다린 끝에 반으로 잘라 은박지에 포장되어 나온 스테이크를 받아들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스테이크와 전혀 다른, 한국 불고기 식으로 조리한 소고기를 길쭉한 롤빵에 넣어 만든 일종의 샌드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냥 다진 소고기 샌드위치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스테이크라는 이름을 붙여 헷갈리게 만들었는지 의아해하며 배고픈 김에 북적대는 사람들을 비집고 자리에 앉아 스테이크를 먹기 시작했지만 내 입맛에는 소문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1893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시장에 와서 필라델피아 대표 음식을 먹어 보고 갖가지 식료품을 쌓아올린 상점들을 구경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필라델피아 치즈 스테이크. 얇게 자른 소고기를 판에 볶아 롤빵에 채운 샌드위치이다.    

 

에드가 앨런 포의 집으로 가는 길, 그의 흔적을 직접 볼 수 있다니 마음속에 흥분이 일었다. 리딩 터미널 시장에서 시청역 쪽으로 나와 레드라인 지하철을 타고 스프링 가든에서 내려 몇 블록 걸어가니 한 눈에 봐도 가난해 보이는 동네 입구에 그의 집이 있었다. 국립 역사유적지로 지정된 이 건물은 포의 열혈 독자 한 명이 그의 집이 속해 있던 건물 전체를 사들여 시에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갈가마귀’(The Raven), ‘애너벨 리’(Annabel Lee)등 유명 시들뿐만 아니라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등으로 우리나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포가 결핵으로 죽어가던 아내와 함께 1843년부터 약 1년간 살았다는 집이다. 포의 대표작인 검은 고양이황금충이 그가 이 집에서 사는 동안 출간되었다고 한다.

      

▲ 필라델피아 스프링 가든에 위치한 에드가 앨런 포 역사 유적지    

 

1809년 보스톤의 배우 부모에게서 태어난 포는 한 살 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두 살 때 어머니마저 결핵으로 잃은 뒤 극장 분장실에서 배우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다 존 앨런(John Allan)이라는 담배 상인에게 입양되어 그의 성을 받게 된다.

 

그러나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를 잃은 상실감 때문이었을까. 일찍부터 글쓰기에 능했지만 내성적이고 불안정했던 포는 대학 시절부터 술과 도박에 빠져 양부와 불화를 겪었고, 군인이 되려고 입학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서도 불명예 제대한 뒤 그와 의절하게 된다. 1831년 양부의 집을 나와 오갈 데 없는 그를 받아준 것은 고모였는데, 그녀의 집에 기거하는 동안 포는 사촌동생 버지니아 클렘(Virginia Clemn)과 사랑에 빠져 183627세의 나이에 당시 13세였던 그녀와 결혼했다.

 

여기서 포를 현대의 시각으로 소아성애자근친상간자로 오해하시지는 마시길!! 서양에서 사촌끼리의 결혼은 흔히 있었던 일이고, 과거 우리 사회에서도 14-15세 소녀의 결혼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두 사람의 열렬한 사랑은 가난과 질병 속에서 버지니아가 24세에 결핵으로 죽은 뒤에 쓰여진 에너벨 리라는 시에 묘사된 대로 슬픔과 비극으로 끝난다.

 

▲ 에드가 앨런 포와 그의 아내이자 사촌이었던 버지니아 클렘  (사진출처=구글)

 

 

1845년 무명작가 포를 일약 유명 시인으로 만들어준 갈가마귀역시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슬픔과 우울함에 빠진 젊은 남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많은 비평가들이 당시 결핵으로 죽어가던 버지니아가 그 모델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어느 폭풍우 치는 날 창가로 날아든 검은 까마귀를 저승세계에서 온 사자로 느끼며 절박하게 죽은 연인의 안부를 묻는 남성 화자에게 까마귀는 위엄 있게 창가에 앉아 ‘Nevermore’(결코 더는 아냐) 단 한 마디만을 반복할 뿐이다. 연인을 잃은 슬픔과 우울함의 정서를 자음과 모음의 다채로운 운율로 표출한 갈가마귀는 언어의 음악성을 통해 천상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포의 시작 원리를 구현한 대표작이다.

 

▲ 포의 대표작 ‘The Raven'의 이미지 (사진출처=구글)    

 

갈가마귀로 명성을 얻었지만 이 작품으로 고작 9달러를 받을 만큼 살아생전에 시인으로서, 작가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불행한 천재 에드가 앨런 포. 추리소설, 탐정소설, SF소설을 개척했고, 영국 고딕소설의 전통을 단편소설에 녹여내 어셔가의 몰락이나 검은 고양이처럼 예술성 높은 공포소설을 썼으며, 촌철의 감식력으로 호손이나 멜빌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알아보았던 전문적 비평가였던 포는 생계 문제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빈곤에 시달리다 1847년 아내가 죽은 뒤 술과 아편에 의존하며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해진다. 그로부터 불과 2년 뒤 포는 볼티모어의 길거리에서 행려병자 모습으로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에 실려 가지만 다시 깨어나지 못하고 힘들었던 생을 마감한다.

 

 

그의 천재성과 비극적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뒤늦게 세워진 포의 박물관 입구 잔디밭에는 철 기둥에 앉아 단호하게 ‘Nevermore’를 외치듯 입을 벌린 갈가마귀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친 채 방문객을 맞이한다. 여행자들로 북적대는 시내 중심가와 확연히 대비되는, 적막감마저 감도는 가난한 동네에서 방문객도 많지 않은 그의 집 앞에 서 있자니 난방도 안 되는 추운 방안에서 결핵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포의 슬픔과 우울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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