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오래된 미래1] 만남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19/06/17 [18:38]

[윤관범의 오래된 미래1] 만남

남정현 기자 | 입력 : 2019/06/17 [18:38]

 

만남

 

▲ 칼럼니스트 윤관범    

 

만남이라 써놓고 하루가 지났다. 하루가 지나도 그 수많은 만남 앞에 어울릴만한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과의 만남은 수식어를 부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만나고 싶어 만난 것이 아니지만 헤어지기 싫어도 헤어질 수밖에 없는 만남. 보기 싫어도 매일 보아야 하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만남. 바로 교사와 학생의 만남. 이 만남을 수식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너무 많은 수식어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이런 예외적인 만남을 34년간 경험했다. 그것도 가장 경이로운 10대 젊은이들과. 마음에 드는 아이도 보기 싫은 아이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들과 만날 때는 내 전부를 동원했다. 만남 이전과 이후의 나는 당연히 조금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들과 다른 공간에 있어도 많은 시간 난 그들과 함께 있었다. 긴 세월 동안 6000명이 넘는 아이들과 만났지만 198532일 첫 만남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름은 가물가물해도 가끔 느닷없이 전화하는 10살 차이나는 중년의 아이들이 나 누구예요라고 하면 그 아이의 얼굴이, 또 그 아이와 만났던 그 특별한 장면이 또렷이 떠오른다. 그 오후의 햇살과 햇살 따라 유영하던 먼지까지 또렷이 말이다.

 

27살 새내기 교사가 학급 담임까지 맡았으니 그해 3월 한 달은 정말 좌충우돌이었다. 교사가 학생들을 보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사를 살피고 응원했다. 이성을 잃기도 했고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나를 바꾸어 놓았다. 아이들과 차례로 면담을 하던 중 그 아이가 앞에 앉자마자 넌 요즘 가장 속상한 게 뭐야?” 물었다. 앞에 아이들에게 쭉 했던 질문이었다. 대뜸 눈물부터 쏟는 아이도 있었고(흡족했다) 머뭇거리다가 주섬주섬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요놈, 질문 받자마자 바로 선생님은 아이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되물었다. 항상 말 없는 아이였다. 순간 허물어졌다. 잠시 침묵하다 3월 한 달 새내기 교사의 문제를 털어놓고 개인적인 만남에서조차 드러난 나의 루틴을 사과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첫해 가장 잘한 일이었다. 면담이 끝나고 일어서면서 졸업하고도 찾아오는 학생이 되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 아이의 희미한 미소가 생각난다. 퇴근길 그 만남을 곱씹으며 교사로서 새 목표를 갖게 되었다. 그래 1년에 적어도 1명은 평생 만날 수 있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 우선 아이들이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동시대인이란 걸 잊지 말자.

 

휙 시간이 지난 지금 난 몇 명의 친구를 얻었을까? 건너뛴 해도 있지만 30명 정도는 일 년에 한 번 이상 만난다. 옛날이야기도 하지만 현재 살면서 하는 생각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과거엔 앞에 서서 그들의 시선을 마주했지만 지금은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분위기가 정겹다.

 

▲ 자 이런 만남을 뭐라 하겠는가? 이제 와서 돌아보면 학생과 교사의 바람직한 만남은 또 다른 의미의 “오래된 미래”라 할 수도 있겠다. 평생 만남을 씨앗 속에 담고 오늘 아이들과 만나는 이 순간이 어떤 과거로 뿌리내릴지 헤아리는 만남이라면 말이다. (칼럼내용) 사진은 현재 모습 속 과거로 뿌리내려진 어린시절 이강인의 모습이 포개진다.     © 남정현 기자

 

동시대인 맞다. 자 이런 만남을 뭐라 하겠는가? 이제 와서 돌아보면 학생과 교사의 바람직한 만남은 또 다른 의미의 오래된 미래라 할 수도 있겠다. 평생 만남을 씨앗 속에 담고 오늘 아이들과 만나는 이 순간이 어떤 과거로 뿌리내릴지 헤아리는 만남이라면 말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을 만나도 전혀 변하지 않는 자신을 보았다. 같은 공간에서 학생들과 늘 함께 생활하지만 만남이 실종된 것이다. 정년을 2년 앞두고 올 2월 연금생활자가 된 이유다. 이제 내가 쓰고 있던 페르소나 하나를 벗었다. 그러나 오래된 만남은 계속 이어지겠지. 아니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만남의 지속성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야 하니까.

 

누구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특히 그동안 한쪽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가족들과의 만남에 오래된 미래를 불러들여야지. 당돌하게 되묻던 그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족으로서 서툴렀던 삶을 고백하자. 생각은 굴뚝인데 아직은 일상의 반복이다.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 특히 그동안 한쪽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가족들과의 만남에 오래된 미래를 불러들여야지. 당돌하게 되묻던 그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족으로서 서툴렀던 삶을 고백하자. 생각은 굴뚝인데 아직은 일상의 반복이다. (칼럼 내용)     © 남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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