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우수마발3] 살림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0/10/07 [14:54]

[윤관범의 우수마발3] 살림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0/10/07 [14:54]

 

살림

 

▲ 묵묵히 살림해 온 사람들, 살림하며 그들 머리에 스쳐 갔을 숱한 생각의 편린들... 시시포스와 같은 심경으로 체념하며 버텨 왔을지라도 그들이 무거운 바위를 끌어 올리고 떨어뜨린 횟수만큼 그들을 존경한다.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여태 살면서 살림을 해 본 적이 없다. 음식 만들기는 물론 세탁기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랐다. 한동안은 어머니가 나를 살렸고 이어 지금까지 아내의 손길 덕분에 살아 있는 셈이다. 살림이란 게 가장 기본이며 그만큼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머리로 아는 게 뭐 아는 것이겠는가. 오히려 살아 주는 게 벼슬인 양, 때론 살림에 대한 비판도 주저하지 않았으니 뒤돌아보면 참 부끄러울 따름이다.

 

혼자 산 지 1달이 넘었다.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는 걸 보면 그동안 내가 날 살린 거다. 살림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정 급하면 여기저기 물어보며 평생 처음 해 보는 과정들을 반복하고 있다. 혼자 사는데 살림이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살림이란 게 혼자 살든 여럿이 살든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란 사실. 혼자 살며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은 남을 살리는 것이 아니니 살림이라 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면 뭐 정색하며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성을 다해 나를 살리려는 행위는 생존과 결이 다르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살림이 소중한 과정이라는 데 토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중한 살림을 진짜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심지어 살림하는 사람일지라도. 어쩌면 살림하는 사람들이 더 그러할지도 모른다. 보험회사 같은 곳에서 주부의 노동력을 구체적인 액수로 산정하긴 하지만 살림엔 임금이 없기 때문일까? 살림은 거르면 금방 티가 나지만 매일 열심히 해도 표가 나지 않기 때문일까? 집과 그 안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경영하는 일인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침묵 속 행위라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잠깐 살림을 하면서 매 순간 강하게 다가오는 느낌은 낯 간지럽긴 하지만 가능하면 누가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살림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살림을 안 한다면 살림에 들어가는 적지 않은 시간에 뭘 하겠다는 거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멍하니 있어도 좋으니 살림은 피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먹고 사는 일은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니니 그 일에 의미 부여가 힘들지도 모른다. 불려 놓은 쌀을 옮기다 엎었다든가 김치찌개 끓일 준비가 다 끝나 이미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았는데 고기를 넣지 않아 그제서야 냉동실에서 꽝꽝 얼어붙은 덩어리를 꺼내 해체하는 씨름을 할 때면 아 꼭 이래야 하나 먹고 산다는 게 추접스러워진다. 짐승보다 더 많은 시간을 먹는 일에 소비하다니.

 

내게 있어 살림의 어려움은 먹는 일이다. 처음 하는 일이니 서툴기도 하지만 매 끼니 뭘 먹지 머리 굴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밑반찬은 1주일에 한 번 사 먹고 아직은 한정된 요리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어제 저녁 메뉴는 카레라이스. 처음 시도하는 요리라 과정도 엉망진창이고 그릇이란 그릇은 다 꺼내 늘어놓고 나 홀로 분주했지만 완성된 카레를 접시에 담아 한 숟가락 뜬 내 기분은 어떠했을까? 다른 요리에도 도전해야지. 제대로 만들어야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면 이웃도 초청해야지. 요리도 만들어나가는 일이라는 것. 품질도 좋아야겠지만 보기에도 좋아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만들어 먹는 과정도 그리 귀찮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혼자 먹을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 조절이 관건이고 1인용 재료를 팔지 않으니 보관에 대한 정보도 매우 중요하다. 가을이 깊어지면 한 번 해놓은 음식을 다음 날 먹을 수도 있으니 날이 추워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살다 보면 요령도 늘 것이고 시간도 단축되겠지. 번 시간은 새로운 요리 탐색에 써야겠다. 내년 봄 텃밭에 심을 거리도 신중하게 골라야 하고. 무엇보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기 위해 먹는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큰 소득이다.

 

묵묵히 살림해 온 사람들, 살림하며 그들 머리에 스쳐 갔을 숱한 생각의 편린들. 그들이 존경스럽고 조각난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시시포스와 같은 심경으로 체념하며 버텨 왔을지라도 그들이 무거운 바위를 끌어 올리고 떨어뜨린 횟수만큼 그들을 존경한다. 횟수를 기억하지 못하니 더욱 그들의 삶에 옷깃을 여민다. 올해 94세인 어머니. 형수님이 자주 찾아뵙고 보살피고 있지만 아직 살림을 하고 있다. 최소한도의 살림이지만 언제 가도 어머니의 집은 항상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살림이 어머니를 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살림의 고수들은 “어디 잘해 봐라” 웃을지도 모르고 나 또한 언제 생각이 바뀌어 시들해질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지금 아니겠는가? 잘하진 못하지만 좋아하는 사진 촬영이나 그림 그리기처럼 과정에 충실하며 사는 데까지 살고 싶다. (칼럼 내용 중)  © 남정현 기자

 

이번 주말 가족이 온다. 그들이 오면 파스타와 소고기 국수전골을 대접할 예정이다. 그러려면 이번 주 한 번은 만들어 봐야 한다. 자신은 있다. 내게 요리 감각이 어느 정도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렇게 가족을 기다리며 요리하듯 나 혼자만을 위한 요리라도 호기심과 정성을 잃지 않고 지금 같이 살림을 했으면 한다. 살림의 고수들은 어디 잘해 봐라웃을지도 모르고 나 또한 언제 생각이 바뀌어 시들해질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지금 아니겠는가? 잘하진 못하지만 좋아하는 사진 촬영이나 그림 그리기처럼 과정에 충실하며 사는 데까지 살고 싶다.

 

내가 처음 해 준 음식을 먹고 보일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특히 아내의 반응이. 그동안 나를 살려 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도 전해야 할 텐데 쑥스러워 어쩌지? 어두워지면 반딧불 보자며 같이 나가 실루엣만 남은 능선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고마운 마음을 슬며시 전해야겠다. 남은 음식을 다 먹어치우자며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할당량을 정해 주던 당신 마음을 이젠 철저히 공감한다는 말도 꼭 해야지. 저 멀리 능선 따라 부끄러운 가을이 달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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