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교수의 영미단편소설 읽기3] 공동체의 폭력과 가해자라는 이름의 피해자

: 셔우드 앤더슨의 “손”(Hands)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0/10/13 [15:03]

[김선옥 교수의 영미단편소설 읽기3] 공동체의 폭력과 가해자라는 이름의 피해자

: 셔우드 앤더슨의 “손”(Hands)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0/10/13 [15:03]

 

공동체의 폭력과 가해자라는 이름의 피해자

: 셔우드 앤더슨의 ”(Hands) 

 

▲ Sherwood Anderson(1876-1941)은 한 때 사업에 종사하기도 했으나 신경쇠약을 겪은 뒤 작품 활동에 전념했고 산업문명이 가져온 인간 소외의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나쁜 손들이 일으킨 사건들이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쁜 손들이 저지른 추악한 행태가 고발되고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응징되고 있다. ‘나쁜 손들은 누군가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약자들을 굴복시키거나 인격을 짓밟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쁜 손의 주인들은 처벌받아 마땅하고 그들이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약자를 짓밟지 않도록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그들을 고발해야 한다. 이때 공동체의 지지와 연대는 그들로 하여금 용기를 내고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쁜 손을 규탄하고 응징하는 분노어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사소한 오해로, 혹은 사적인 악의나 복수심으로 다른 사람의 호의적인 손을 나쁜 손으로 고발한다면 공동체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여기 소년의 몸을 탐한 나쁜 손의 주인으로 몰려 20대의 젊은 날에 삶이 산산조각난 한 남성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룬 유명한 단편소설이 있다. 20세기 미국 현대작가의 스승이라 할 만한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의 대표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Winesburg, Ohio)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 ”(Hands)은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젊은 남자 선생님이 한 학생의 거짓말로 순식간에 남학생들의 몸을 만지는 성추행범으로 몰려 집단 폭력과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을 겪는 일화를 다룬다.

 

20세기 초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소도시에 위치한 남학교에서 종종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과 어울리던 아돌프 마이어스(Adolph Myers) 선생님은 진심어린 애정을 기울여 학생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려 한다. 당연 그의 주변에는 늘 소년들이 모여들었고, 그들과 함께할 때마다 마이어스 선생님의 손은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부드럽게 학생들의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는다.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격려할 때마다 활발하게 움직였던 그 손은 그러나 선생님을 흠모했던 한 어리석은 소년이 꿈속에서 선생님과 애정 행각을 벌인 것을 진짜처럼 떠벌린 순간부터 삽시간에 더럽고 추한 손이 되어 온 동네를 경악케 한다.

 

부모들은 전후사정을 따져 진실을 밝히는 대신 소년들을 불러 선생님의 손이 그들의 몸을 만졌는지를 따져 물었고, 어깨와 머리를 쓰다듬던 선생님의 손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어른들의 닦달과 만연한 의심 속에 선생님과 즐거웠던 기억을 밀쳐내고 누구도 선생님을 변호하지 않음으로써 공범이 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가운데 술집을 운영하는 학생의 아버지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집단 린치를 가하려고 밧줄을 들고 몰려든 동네 사람들을 피해 어둠 속으로 간신히 도망친 마이어스 선생님, 이런 트라우마를 겪고 그가 다시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공포에 질려 고모가 살고 있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라는 소도시로 도망친 마이어스는 기차역 화물상자에서 본 비들바움(Biddlebaum)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감추고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산다. 꼬박 1년을 아프고 몸이 회복된 뒤 와인즈버그에서 다시 시작한 삶은 딸기 따는 일일 노동자. 학생들을 격려하고 쓰다듬던 그의 큰 손은 쉴 새 없이 불안하게 움직였지만 딸기 수확에 있어서만큼은 와인즈버그의 자랑이라 할 만큼 능숙하고 유능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어딘가로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그의 불안한 손은 새장에 갇힌 새의 날개짓을 연상시켜 와인즈버그에서 그는 윙 비들바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나이 마흔에 이미 60대 중반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과거를 알 길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윙 비들바움은 그저 기괴하고 괴팍스럽고 초라한 미스터리 노인일 뿐이다.

 

누가 보상할 것인가, 누가 그의 진실을 알아줄 것인가, 과연 세상은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나 할까. 그렇게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공동체로부터 추방된 뒤 온전한 삶을 사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마이어스 선생님처럼 여리고 부드러운 감성을 지니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던 뼛속까지선생님이었던 한 선량한 인간이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의 거짓말로 순식간에 그렇게 공공의 적으로 고발당한 뒤 온전한 인간으로 살 수 있기나 한 걸까. 와인즈버그에서 다시 시작한 딸기 노동자로서의 윙 비들바움의 삶은 사회적으로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혹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 최근에 소위 디지털교도소에 자신의 이름이 성범죄자로 등록된 것을 억울해하며 목숨을 끊은 어느 대학생처럼. 윙 비들바움의 이야기가 발표된 것은 1916년인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사한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심판하는 경향이 있다. 충분한 조사와 설득력 있는 증거가 제시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범죄 사실이 적시되기도 전에 이미 공동체는 무수한 소문과 억측으로, 때로는 고의적인 여론재판으로 누군가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공격함으로써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회적 사형을 가하기도 한다. 윙 비들바움의 이야기는 공동체의 광기어린 폭력의 희생자가 된 한 선량한 인간의 고통스런 내면을 비춤으로써 도덕적 우월감으로 무장한 채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들며 여론재판에 참여하는 집단의 폭력이 얼마나 위험하고 부당한지를 고발한다.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고 누구도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않다. 타인과 사회에 위해를 가한 잘못은 크든 작든, 실수이든 고의든, 심판받아야 하고 그에 맞게 처벌되어야 마땅하리라. 그러나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듯이 범죄자도 여러 삶의 굴곡을 지닌 인간이고 앞으로 변화 가능성이 있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하물며 면밀한 조사와 재판으로 범죄가 확정되기도 전에 누군가를 범죄자로 재단하고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면 이는 집단이라는 안전장치에 의지해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는 범죄 행위에 동참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인즈버그에서 고독한 노인으로 살아가는 윙 비들바움의 마음을 열게 만든 유일한 친구가 동네 소식지 기자로 일하는 소년 조지 윌라드(George Willard)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윌라드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불안하게 요동치는 윙의 손에 얽힌 사연이 무척 궁금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애써 알아내려 하지 않는다. 그의 사려 깊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20년간 동네의 미스터리였던 윙 비들바움은 윌라드 앞에서만큼은 소심함과 의심 가득한 그늘진 성격을 벗고 꿈꾸는 소년들로 둘러싸였던 과거의 마이어스 선생님 모습으로 돌아간다. 낮고 불안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큰 목소리로 변하고, 구부정한 허리도 펴지며, 낚시꾼이 시내로 돌려보내준 물고기처럼 생명으로 파닥거린다(The voice that had been low and trembling became shrill and loud. The bent figure straightened. With a kind of wriggle, like a fish returned to the brook by the fisherman).

 

시내로 돌아간 물고기처럼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리는 힘, 윌라드가 그런 것처럼 그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누군가의 작은 친절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윙 비들바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이 겪는 수많은 고통과 상처, 그 속에서 소박하게 빛나는 친절한 소년의 마음과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끼고 싶다면 오늘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검색해보시라.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 등 20세기 미국 대가들이 거울로 삼았던 미국문학의 위대한 고전이다.

 

칼럼니스트 원광대 영어교육과 김선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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