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스따
난 조금은 남달랐다. 어쩌면 남다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쩔 수 없이 남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헷갈린다.
그리고 난 왕따였다. 그렇다고 따돌림을 당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스스로 자발적인 경우였다. 우스갯소리로 신조어처럼 요즘에는 ‘스따’라고도 부른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와중에 난 또 다른 왕따의 가해자이기도 했다. 이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하겠다.
학창시절 나는 학우들과 잘 어울려 지냈던 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속까지 어울리진 못했던 것 같다. 집에 오면 늘 혼자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편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정확히 몇 학년이었는지는 기억나진 않는다. 중학교 다니던 무렵, 우리 반 아이들 중 어떤 혀가 짧고 자신의 눈썹을 뽑는 습관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친구를 놀리고 못살게 굴었다. 물론 나는 폭력을 행사하거나 해를 끼치진 않았지만 옆에서 덩달아 놀리긴 했었다. 이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내심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거다. 아. 맞다, 그 친구의 이름은 유진이었다. 유진이는 늘 책을 끼고 살았다. 아마도 또래랑 잘 어울리지 못하니 책과 친해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기억에서 희미해진 무렵 동창모임에서 얼핏 전해 듣기론 유진이는 책을 많이 읽어서일까 공부를 잘해서 ‘의사’가 되었다고 했다. 흔히 인식되는 사회적 성공의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실 유진이는 결코 무리에서 도태될 만한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나보다, 아니 우리보다는 훨씬 뛰어난 아이였던 것이다.
그 때 놀려댔던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아마도 다름이 불편했나보다. 마치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들이 부상당한 개체를 위험 요소라 생각해서 무리에서 도태시키듯이, 어쩌면 태고 적부터 가지고 온 어떤 유전적 기억이 우리에게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라고 미안한 마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오늘 문득 기억 속에서 외로워보였던 유진이가 생각났던 것은 많이 늦었지만 마음속으로 사과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어린 시절 상처일 수도 있었을 텐데 누구보다 잘 성장하여 선망의 대상인 의사가 된 유진, 지금은 연락조차 안되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 어린 유진이에게 미안했다는 말과 잘 자란 것에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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