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우수마발7] 시사여생(視死如生)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1/05/10 [13:15]

[윤관범의 우수마발7] 시사여생(視死如生)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1/05/10 [13:15]

 

시사여생(視死如生)

 

▲ 원소가 해체되는 화학 작용이든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하는 것이든 죽음은 지금 살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 죽음을 두려워하는 문제는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없는 것이다. (칼럼 내용 중)



얼마 전 반가운 이들이 찾아왔다. 1년 만에 보는 얼굴들. 전 직장 동료들이다. 30년 넘게 같이 생활하며 일 때문에 아웅다웅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서로 다툴 것도, 서운할 것도 없는 친구들이다. 술자리에 둘러앉아 묵혔던 이야기들을 경쟁하듯 풀어냈다. 삶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도 비슷한 고민들. 빈 술병이 늘어나면서 우리는 한 가지 화두에 매달렸다. 죽음. 우리들의 죽음. 그러나 다들 아직은 정상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고 내일도 오늘같이 살 거라는 삶의 관성 때문인가 후끈한 우리들의 열기에도 죽음은 저만치 우리들의 이야기를 벗어나 있었다. 죽음은 이미 우리네 삶 속에 들어와 있지만 모두 아직은 살고 싶은 것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7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다시 서기 위해 1년 동안 무진 애를 썼고 희망을 접고 6년을 누워서 보냈다. 누워서 식사하고 볼일 보고 누군가는 꼭 옆에 붙어 시중을 들어야 했지만 모든 수치와 고통은 당신 혼자 감내해야 했다. 20일 넘게 단식하며 그만 끝내겠다는 시도도 두어 번 있었지만 생명의 끈은 질기디 질기고 삶의 바람은 그때마다 다시 돋아나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 사이 그 불투명한 그라데이션을 헤치며 낯선 길로 접어드는 일. 아버지는 그런 중노동을 7년 동안 한 셈이다. 장례를 치르면서 딱 한 번 울었다. 하얗게 누워 마지막 저승길을 준비하는 이는 내 아버지가 틀림없었지만 거기에 내가 알던 아버지는 없었다. 30년 넘게 나를 지켜보며 내가 모르는 나를 보기도 했을 이가 없어진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나의 일부분도 없어졌다는 상실감에 염하는 내내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방학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충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조심스레 손가락질하는 곳을 보니 그가 서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창백한 안색도 안색이려니와 전체적인 그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날 찾아와 뒷일을 부탁하고 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위암 수술, 항암 치료, 요양원 입원. 그는 자기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전화도 할 수 없었으나 문자를 주고받으며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앞으로의 삶이 크게 바뀔 것 같지도 않으니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50대 초반의 가장이 죽음을 앞에 두고 살짝 열어 보인 마음속 한 귀퉁이. 그리고 한 달도 안 돼 그는 죽었다. 그와 나는 동갑내기여서 그랬을까? 그의 죽음은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확인시켜 주었으며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나의 죽음을 일깨워 주었다. 대상을 인식할 때 그 대상 속에 내가 있듯 이후 난 늘 죽음과 함께 살았다.

 

작년 가을 남자 친구와 함께, 또 겨울엔 동기들하고 산골에서 혼자 사는 날 찾아 주었던 아이. 떠날 때마다 슬며시 손 편지를 남기던 그가 지금은 의식 없이 한 달 넘게 병원에 누워있다. 폐쇄성 폐질환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고 에크모로 생명을 유지하다 폐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리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뇌경색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는데 의식을 찾더라도 과거의 그로 돌아올 수 있을지. 언젠가 그는 사는 게 힘들다 했다. 그러나 얼마 전 남긴 편지엔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했다. 수술받기 전 그가 보낸 문자는 삶의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살고 싶다는 말이 죽고 싶다는 말보다 더 절망적이라는 영화 대사가 떠올랐다. 여전히 의식은 없지만 한쪽 팔다리를 조금씩 움직인다는 연락을 받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일 게다. 이제 그만 그가 편안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의 필사적인 발버둥이 어쩌면 우리 모습인 것 같아 저만큼 내 삶에 들어와 있는 죽음을 바라보게 된다. 한때 난 그의 선생이었지만 이젠 그가 나를 가르친다. 옴마니반메훔.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죽음을 보았지만 대부분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죽음의 고지(告知)였다. 앞서 말한 경험들이 나에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죽음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리라. 우리에게 죽음은 삶과의 연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죽음이란 죽어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 역시 삶이다. 어느 때보다 강렬한 삶이다. 죽음 이후는 그래서 관심 없다. 어차피 스러질 텐데 왜 생명을 얻어 자연계로 들어왔는지, 그러면서 태어나면 왜 죽기 싫어하는지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어찌 보면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에피쿠로스의 말마따나 살아있을 땐 죽음이 없고 죽을 땐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실 우리 소관이 아닌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앞이 보이지 않은 길에 대한 적대감일지도 모른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태아의 죽음이라 볼 수도 있다. 어미 자궁 속이 전부이던 태아가 어미를 떠나 세상에 나오는 건 가보지 않은 길에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

 

나비에게 애벌레의 기억이 없듯 태어난 아기도 어리둥절 새 세상에 적응하느라 태중의 기억을 놓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원소가 해체되는 화학 작용이든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하는 것이든 죽음은 지금 살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우리 일이 아닌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문제는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을 입어 이 세상에 나온 이유는 그 무엇에도 떠넘길 수 없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먹고 살기 바빠 자주 끊어지긴 했지만 20여 년간 고민해온 숙제다. 해 있을 땐 애먼 짓 하며 허송세월 보내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초조한 마음으로 숙제를 펼친 요즘이다. 공부하기 위해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 막연히 생각한 지는 꽤 되었지만 삶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란 생각으로 요즘 바쁘다. 살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공부, 살을 입어야만 고통을, ()를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을 통해 영()이든 뭐든 정화시키는 공부. 예수는 인류를 위해 육신을 입었다. 33년을 살고 다 이루었다숙제 끝을 알렸다. 나는 얼마만큼 나를 확장시킬 수 있을지 새로운 숙제를 받아든 요즘이다. 나를 한정하던 테두리를 없애고 내가 없어지면 삶과 죽음의 경계도 허물어질까? 글쎄, 생각이 많은 걸 보니 나는 아직도 살고 싶은가 보다.

 

오늘도 갈산 너머 해가 진다. 해가 넘어가도 노을은 한동안 하늘을 물들이듯 죽은 사람도 산 사람들 속에 노을로 번진다. 예수의 노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나의 노을은 얼마나 지속될까? 지는 해가 다른 곳에선 뜨는 해가 되듯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해야 계속 뜨고 지겠지만 오늘의 그 해는 아닐 것이다. 해도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 해가 넘어가도 노을은 한동안 하늘을 물들이듯 죽은 사람도 산 사람들 속에 노을로 번진다. 예수의 노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나의 노을은 얼마나 지속될까? (칼럼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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