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범의 우수마발8] 옷, 페르소나

남정현 기자 | 기사입력 2021/05/13 [17:23]

[윤관범의 우수마발8] 옷, 페르소나

남정현 기자 | 입력 : 2021/05/13 [17:23]

 

, 페르소나

 

▲ 한복을 선택한 이유는 편하기 때문이라 답했지만 한복을 입은 지 10분도 되지 않아 이미 나는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아무 해명 없이 감당할 만큼 제멋대로인 나였지만 불편해하는 남들 속에서 나만 편할 만큼 낯 두꺼운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칼럼 내용 중)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오늘 우리에게 예수가 이런 가르침을 준다면 우리는 그를 젊은 꼰대라 제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5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80년대 초중반 사회인이 된 베이비 부머 세대는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청바지와 미니스커트가 우리 세대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사실 대부분 옷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특별히 가난했지만 모두 가난했기에 가난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60년대까지 나는 구호품이나 남들이 준 옷을 입었지만 어머니의 손을 거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되어 또래 중에는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오래 입어 반들반들해진 털스웨터를 풀어 끓는 물을 담은 주전자와 냄비를 통과하면 다시 살아나던 털실, 새 생명을 얻은 실로 꽃무늬까지 넣어 새 스웨터를 짜던 어머니의 요술은 지금도 생생하다. 헤진 무릎 부분을 오려내고 덧붙인 토끼 두 마리는 아직도 내 속에 살아있다. 그러나 내가 입은 옷을 자랑스럽게 여긴 적은 없다. 어머니가 자랑스러웠을 뿐이다.

 

70년대 중학생이 되어 처음 옷을 샀다. 그리고 6년 동안 우린 누구나 교복을 입었다. 상의 단추를 두어 개 풀거나 교련복 상의를 빼입는 등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려 애썼지만 무슨 짓을 해도 교복은 교복이었다.

 

대학을 가고 교복을 벗게 되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옷도 별로 다양하지 않았을 뿐더러 어딜 보아도 모두 후줄근한 고만고만한 차림새였으며 이상하게 70, 80년대엔 어두운 곳이 많아 옷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두운 음악다방이나 경양식집,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그로테스크한 실루엣으로 앉아 있던 우리에게 옷은 별 의미가 없었다.

 

80년대 중반 교사가 되고 특별한 고민 없이 그냥 동료들과 비슷한 옷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회의 시간, 문득 같은 옷은 하나도 없었지만 동료들이 전부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취향이라든가 경제적 여건이라든가 여러 조건 속에서 우린 옷을 선택하지만 대부분 남들의 시선을 끌지 않고 대중 속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린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거나 진배없지 않을까? 학교마다 교복은 다르고 군복도 여러 종류지만 유니폼은 다 같은 상징을 갖는 것처럼 각 계층의 사람들이 다양한 옷을 입지만 모두 우리가 사는 시대가 허용한 범주 안에서 선택한 유니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입을 옷을 한 번도 선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양복을 입어야 하지? 그럼 뭘 입지? 딱 하루 곰곰 생각하다 한복에서 생각이 멈췄다. 다소 국수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체구가 작은 나에게 상체와 하체의 구분을 뭉뚱그려줄 수 있는 한복이 좋을 것 같았다. 당시 개량한복이 붐을 일으키고 있었던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처음 짙은 회색의 솜옷을 입고 출근했던 날.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전철 내 옆자리는 한동안 비어있었다. 과천에서 한 아주머니가 앉을 때까지. 나의 과민함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모두 안 보는 척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별거 아니라는 듯 모두 애써 일상의 평온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평소와 달리 나와 동료들의 거리는 전철 속 빈자리만큼 벌어져 있었다. “잘 어울리는데어깨를 툭 치며 평소와 다름없이 친근하게 대하는 동료의 목소리도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단지 내 기분 탓이었을까?

 

교실에 들어선 나를 폭소로 맞이한 아이들만이 자연스러웠다. “그거 왜 입었어요?” “오늘 무슨 날이예요?” “계속 그렇게 입어요. 멋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한복만 입을 것이고 오늘이 바로 태어나서 처음 내가 입을 옷을 선택한 날이며 한복을 선택한 이유는 편하기 때문이라 답했지만 한복을 입은 지 10분도 되지 않아 이미 나는 엄청난 불편을 겪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아무 해명 없이 감당할 만큼 제멋대로인 나였지만 불편해하는 남들 속에서 나만 편할 만큼 낯 두꺼운 인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꼬박 2년 동안 그런 불편함을 감수했다. 나의 선택이란 고집도 있었지만 차츰 사람들이 내 옷차림에 보이는 반응을 관찰하는 재미가 불편함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피했지만 때로 공격적이기도 한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입는 옷은 단지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설명하는 도구라는 것을 매 순간 경험했다. “종교인이세요?” “택견 하세요?” 옷과 관련된 이미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질문 속에서 내가 선택한 옷은 그냥 옷이 아니라 무대의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학년 초에 만나는 학부모들은 거의 모두 날 국어 선생이나 한문 선생으로 생각했다. 난 매일 드러내 놓고 내 삶을 연출한 것이었다.

 

회의 시간에 다소 공격적인 발언을 하여도 동료들의 반응은 전과 달랐다. 즉각적인 반응을 피했고 반론을 하더라도 다소 조심하는 듯했다. 생전 처음 보는 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류장에서 새치기하는 등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나도 모르게 제지하고 나서면 다들 일단은 주춤하며 물러섰다. 저 인간은 뭔가 특이하다, 우리랑 다르다는 생경함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 내가 입은 옷이 그들을 저지한 것이다.

 

 

계속 구입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과 어디서나 은근히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다시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고 익명의 편안함을 선택했다. 비록 잠깐이지만 내 옷 때문에 불편했을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아무 말 안 했지만 한복 입은 남편이, 아버지가 불편했을지도 모를 가족에게도 미안하다. 지금은 옷장 속에서도 거의 자취를 감춘 한복에게도 미안하다.

 

이제 나의 옷은 거의 동물의 털 입기 수준으로 진화했다. 문화를 벗어 버리고 털갈이하듯 자연환경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진화와 정반대되는 또 하나의 대척점일지 모르나 이젠 옷에 기호를 입히지 않으니 발전 아니겠는가. 남들이 보면 기가 막힐지 모르지만 20도를 넘나드는 5월의 봄에도 난 아직 고무줄 넣은 두툼한 바지를 입고 있다. 좀 거친 진돗개와 놀려면, 그리고 해가 지면 바로 썰렁해지는 산골 생활을 하려면 이만한 옷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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